봉사하는 사람에게 수치(羞恥)
왕국생활
2014-04-19 , 조회 (544) , 추천 (0)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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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감소(減少)시키기 위해 사람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봉사하는 사람에게 수치(羞恥)임

헌신의 길은 고난(苦難)의 길이고 희생(犧牲)의 길이며,
우리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길이다.
어떤 사람은 헌신을 하고서 자신의 고난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의 동정(同情)을 얻으려 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드린 헌신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자신의 고난을 가볍게 하려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헌신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 모든 사람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기꺼이 고난 받을지언정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말아야 하며,
사흘을 굶었을지라도 사람들에게 굶은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

과거 우리 가운데 가장 먼저 주님을 섬겼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사람들에게
만일 그들이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면
이 길을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들의 능력(能力)으로 보자면
세상에서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주님을 섬기는 것 때문에 세상으로 가지 않았다.
이것은 초기에 우리 가운데서 주님을 섬겼던 사람들이 가졌던
상태(常態)와 품격(品格)이었다.

만일 우리가 이 길을 가면서
우리를 도와주기만을 바란다면
이 얼마나 가련(可憐)한 사람인가? 
그렇다면 참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생(寄生)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계속해서
기대(企待)해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의 헌신의 상태가 얼마나
퇴보(退步)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에 대하여
성도들이 사랑을 갖지 말고 관심(關心)을 갖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별개(別個)의 문제이다.
앞서 달려간 우리의 동역자들은 한 가지 원칙을 줄곧 붙잡아 왔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우리를 관심하는
그 돌봄에 감사(感謝)하게 여기지 않고
감격(感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기의 손으로
직접 헌금을 주는 그러한 도움을 거절해야 한다.
만일 사람들이 우리를 돌보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헌금(獻金)함을 통해서 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이든 사람의 손에서 얻기를 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손에서 공급 받기만을 원한다.

이 길을 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이 길이 고난(苦難)의 길이자
가난의 길이라는 것을 분명(分明)히 알아야 하며,
이 길에서 어떤 형통(亨通)한 일도 기대(企待)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가 이 길을 택할 때
여유(餘裕)롭고 평안(平安)한 날들만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버려야 할 뿐 아니라
그분을 따를 때 심지어 목숨까지도 잃어버릴
각오(覺悟)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헌신의 길이다.
어쩌면 일 년 내내 당신에게 안부(安否)를 물어보거나
당신을 돌봐주는 사람들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믿음을 의지(依支)함으로 전진할 수 있다.
이것은 얼마나 영광(榮光)스러운가!

교회를 건축하는 일을 하려면
반드시 이름과 명예(名譽)와 몸과 가정이 망가져야 하며,
우리의 명예와 몸과 가정이 매장(埋葬)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의 일생(一生)은 주님에 의해 망가졌으며,
주님은 자연스럽게 그의 모든 것을 얻으셨다.
주 예수님은 사람을 ‘망가뜨리시는’ 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손에 의해 망가졌는지 모른다.

이것은 헌신의 문제이고 대가(代價)의 문제이다.
이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웁니다.”
(골 1:24)라고 말하는 것이다.   

(출처: WL. 교회의 행정과 말씀의 사역, 1957. Taipei)
수치,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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