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으로 보이지 않고 느낌이 없어도 다만 믿음
복음
2014-04-22 , 조회 (235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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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이는 것으로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후 5:7)

For we walk by faith, not by appearance -(2 Cor. 5:7)

복음을 전할 때 두 가지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첫째,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는 영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이것은 다만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뿐 아니라 더욱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주님이 움직이시도록, 주님을 주목하고 권위의 보좌를 만지며 기도하는 영으로 그 부담을 항상 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렇게 지속적이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기도하며, 주님의 간증을 위해 이러한 영혼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그분께 요구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몸 위에 있는 능력에 참여하기 위해, 곧 이미 몸 위에 성취된 성령의 침례를 체험하기 위해 반드시 믿음을 사용해야 한다. 영적인 생명과 영적인 일의 원칙은 모두 믿음의 원칙이지, 보이는 것이나 상황의 원칙이 아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이나 상황이나 느낌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 행하고 일해야 한다. 느낌이나 보이는 것이나 상황에 의존하는 것은 다만 우리에게 믿음이 부족한 악한 마음과 심지어 불신하는 악한 마음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단순히 취함으로 주님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살아 있는 믿음이다. 결코 여러분의 느낌이나 상황이나 보이는 것이나 어떤 종류의 환경도 주의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믿음의 공과를 배움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떠한 느낌이 없을지라도, ‘어둠 안에서’도 믿어야 한다(고후 5:7). 고대에 성막의 바깥뜰에서 주님을 섬겼던 제사장들은 그들의 시력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태양 빛 아래서 하늘과 땅과 많은 사물들과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성소 안에는 태양 빛보다 강하지 않은 등대의 빛만이 있었다. 성소 안에 들어간 제사장들은 바깥뜰에서 볼 수 있었던 하늘과 땅과 주변 경관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때 거기에는 전혀 빛이 없었다. 언약궤는 ‘어둠’ 안에 있었다. 그러나 주님의 임재는 바깥뜰이나 성소 안에 있지 않고 지성소 안에 있었다. 지성소에는 물질적인 빛이 없고 다만 신성한 임재가 나타난 빛,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빛만이 있었다. 그곳에는 창조된 빛이 없고 창조되지 않은 빛만이 있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어리고 미숙할 때 주님은 우리를 동정하시며 우리에게 ‘열린 하늘’을 주신다. 어떤 사람은 침례를 받을 때 성령의 부어짐을 체험한다. 그들은 “와! 나는 거의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뻔했어! 하늘이 나에게 완전히 열려서 나는 춤을 출 정도였어.

나는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어.”라고 말할지 모른다. 나도 이러한 체험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그것을 안다. 그러나 아이는 다만 아이일 뿐이다. 이것은 어린아이를 위한 것이다. 이것을 멸시하지 말라. 이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깥뜰에 있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바깥뜰에서 성소로 이끌어서 약간의 믿음을 사용하게 하신다. 결국 주님은 믿음을 극도로 사용하는 장소인 지성소로 우리를 이끄실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시력과 모든 감각을 잊어버려야 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 혼 생명의 느낌에 대해서도 잊어버려야 한다. 지성소 안에서 우리는 천연적인 것은 어떤 것도 볼 수 없다. 우리는 ‘어둠’ 안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빛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믿음의 의미이다. (생명의 방식으로 복음을 전파함, 제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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