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할 때 합당한 인도자들이 부족한 것은 우리에게 훈련이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냄
양육, 목양
2014-05-06 , 조회 (178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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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일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첫 단계에 있었다. 한 면으로는 훈련의 필요가 없었고, 다른 한 면으로는 훈련을 수행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여행과 다른 일들을 위한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런 까닭으로 1970년 이전에는 정식 훈련이 없었다. 그러나 1968년부터 우리는 비공식적인 훈련을 갖게 되었다. 이 비공식적인 훈련의 필요성은 이주와 관계된 것이었다. 우리가 1964년에 로스앤젤레스의 보니 브레이 스트리트(Bonnie Brae Street)에서 가진 여름 특별 집회 후, 많은 사람들이 분발되어 ‘온 나라를 점령하기 위해’ 이주하기를 원했다. 나는 아직 나갈 때가 아니라고 느꼈다. 군대는 훈련받지 않은 채 싸우러 갈 수 없다.

훈련받지 않은 군대는 다만 적군에게 자신들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나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나가지 말라고 고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주했던 사람들은 그 해 말에 모두 패배하여 돌아왔다. 그 다음해에 우리는 엘든(Elden)의 집회소로 옮겼고, 두 해가 지난 1967년에 몇몇 사람들은 다른 곳에 지방 교회들을 세우기 위해 여전히 나가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느꼈다. 이주는 몇 년 더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1969년 가을에 요바 린다(Yorba Linda)에서 시애틀로, 텍사스의 작은 세 도시에서 휴스턴으로 성도들이 이주하였다. 그 후 1970년에 더 많은 이주가 있었다. 예외 없이 모든 이주가 초기 단계에는 성공적이었다.

1964년부터 1970년까지 6년 동안 비록 정식 훈련은 없었지만 우리 가운데 합당한 인도 직분이 산출되었다. 성도들이 이주하는 곳마다 합당한 인도 직분이 함께 갔다. 그러므로 그러한 이주는 모두 성공적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1973년에는 더 많은 이주가 있었지만 그중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합당한 인도자들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많은 성도들이 일 년 동안 새로운 지방에 머무른 후 전진할 수도 없었고 감히 돌아올 수도 없었다. 그들은 다만 고난 받으며 그곳에 머물렀다. 결국 이주해 나간 많은 사람들이 다른 주요 도시들에 있는 교회 안으로 통합되었다. 합당한 인도 직분이 부족한 것은 우리에게 훈련의 필요성을 더욱 드러내 주었다.

그 당시 나는 나의 사역에 대해 묻기 위해 주님께 많이 나아갔다. 주님은 이 나라에서 성도들을 섬기는 나의 사역이 지난 12년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주셨다. 지난 12년은 우리에게 초기 단계였다. 나는 교회들을 세우기 위해서 여행을 해야 했다. 이제 이 나라에는 35개의 교회가 있으며, 나는 그 교회들을 다 방문할 시간과 여력이 없다. 주님의 회복 안에 약 오천 명의 성도가 있지만 그들 중에 인도 직분을 감당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애너하임만 보더라도 두 개의 교회가 될 정도의 성도들이 충분히 있지만 이것을 수행해 나갈 합당한 인도 직분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 계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주님은 내게 지금부터 훈련을 위해 나의 사역의 모든 시간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훈련은 단지 지식만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훈련은 실행과 합당한 제자 양성을 위한 것이다. 훈련은 생명의 성장과 성격과 타고난 기질을 다루는 것에서 우리를 온전케 한다. 성격은 우리의 기질에 습관이 더해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성격을 바꾸어야 한다. 훈련은 더 깊이 우리의 타고난 기질을 다룬다. 엄밀히 말해서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우리의 기질이 주님께 만져져야 하고 다룸을 받아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단 몇 개월만이라도 훈련을 받는다면 우리는 달라지는 것을 볼 것이다. (교회의 건축을 위해 열매를 맺고 목양하는 정상적인 길, 제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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