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세상의 차이점
생명의 체험
2014-05-10 , 조회 (138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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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마는 현시대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으며,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갔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으며, (딤후 4:10)

For Demas has abandoned me, having loved the present  age, and has gone to Thessalonica; Crescens to Galatia; Titus to Dalmatia.(2 Tim. 4:10)

세상을 처리하는 것은 초기에 그리스도인의 생명을 체험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영적인 조망에 따라서 죄와 세상의 차이점, 세상이 형성된 방법, 세상의 정의, 세상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세상에서 구속하셨는가를 알아볼 것이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게 되면 세상을 처리하는 정확한 체험을 갖게 된다. 우리는 헌신한 후 즉시, 먼저 죄를 처리하고 그다음에 세상을 처리해야 한다. 이들은 우리의 삶을 더럽히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므로 처리되고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더럽힘은 다르다. 죄의 오염은 잔혹하고 거칠고 추한 데 비해, 세상의 오염은 교양 있고 세련되어 있으며 사람이 보기에 흔히 아름답게 나타난다.

죄의 오염은 흰 옷에 진흙이 튀거나 검은 잉크가 묻은 것과 같다. 그러나 세상의 오염은 흰 옷에 새겨진 화려한 모양과 같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검게 얼룩진 옷은 더럽고 바람직하지 않지만 화려하게 꾸며진 옷은 더럽지 않고 오히려 바람직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둘 다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나님은 얼룩진 옷도 화려한 옷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단지 순수한 흰옷을 원하신다. 얼룩이 순수한 흰색이 아니듯이 화려한 모양도 순수한 흰색을 상하게 한다. 이와 같이 세상이 죄보다 더 낫게 보이지만 순수성에 관련된 한, 둘 다 오염되어 있고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죄와 세상이 사람에게 미치는 손상은 크게 다르다. 죄는 사람을 더럽히는 데 반해서, 세상은 사람을 더럽히고 사람을 사로잡는다.

사람의 생활은 죄로 더럽혀지는 것보다 세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 훨씬 더 심각하다. 만일 사탄이 사람을 더럽히기 위해 다만 죄를 이용한다면 사람을 단지 타락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탄이 세상을 이용하여 사람을 침해한다면 사탄을 위한 사람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는 순진하고 순수한 아이가 있다 하자. 어떤 사람이 그 아이에게 거짓말과 훔치는 것과 많은 악한 행실을 가르친다면 그 아이의 순수한 본성을 더럽히고 타락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여전히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부모에게 소속되어 있다. 만일 악한 자가 한 단계 더 나아가 그 아이에게 아름다운 의복을 준다면 아이를 속여 얻을 수 있으며, 그 아이가 부모를 떠나 실종되게 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사탄은 죄를 이용하여 사람을 타락시키고, 세상을 사용하여 사람을 탈취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를 벗어나 상실되게 한다.  창세기를 보면 이 차이점이 분명해진다. 아담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어도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지는 않았다. 창세기 4장에 가서 사람이 문화를 발명하고 세상 조직을 형성한 후로는 타락했을 뿐 아니라 사탄이 세상을 통해 사람을 탈취하고 소유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께 속하지 않게 되었다.  비록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하여 거듭 실패하였어도 그러한 것은 단지 그를 오염시키는 죄에 지나지 않았을 뿐 그를 탈취하지는 못했다.

그는 여전히 주님을 섬기며 이국 땅에서 타인을 위하여 기도했다(창세기 12장과 20장을 보라). 그러나 바울의 동역자인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이 세상에 노략당하였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유용성을 상실했다(딤후 4:10). 이것을 볼 때 사람에게 끼치는 세상의 손상이 죄의 손상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죄의 손상만을 느낄 뿐 세상의 손상은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죄는 도덕을 거스르지만 세상은 도덕을 거스르지 않고 하나님 자신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결여되어 있고 단지 도덕적인 개념만을 갖고 있다. 이러므로 사람은 죄, 즉 도덕을 거스르고 그 더러움을 의식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며 세상에 탈취당하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술고래-방탕하고 음탕하며, 욕망이 있고 하나님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는 부도덕하게 간주되며 사람에게 정죄를 받는다. 그러나 사람이 매일 시와 시 낭독에 심취되고 문학에 몰두하게 되면 하나님께 속한 것들에는 전혀 무관심하게 되고 하나님께 소유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사람들이 자신을 칭찬하므로 문학에 탈취당했다는 느낌을 전혀 갖지 않게 된다. 이러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에 대한 개념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세상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탈취한 것을 모르는 것이다. (생명의 체험, 제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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