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혼이 혼합된 체험 (2)
영에 속한 사람
2014-05-23 , 조회 (122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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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십시요.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 혼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혼 생명을 잃을 것이고,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혼 생명을 잃으면  혼 생명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마 16: 24- 25).
 
Then Jesus said to His disciples, If anyone wants to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For whoever wants to save his soul-life sha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soul-life for My sake shall find it.(Matt. 16:24-25)

그러나 혼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그런 일들을 알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2:14)

But a soulish man does not receive the things of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to him and he is not  able to know them because they are discerned spiritually.(1 Cor. 2:14)  

우리는 사람의 몸이 혼의 껍질(외곽)이고 혼은 영의 껍질이라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지성소 밖이 성소인 것같이 영의 외곽은 바로 혼이다. 이로써 우리는 영이 얼마나 쉽게 혼의 영향을 받는지를 볼 수 있다. 그들의 혼과 영은 긴밀히 조성되어 있다. 비록 그들의 혼이 몸의 통제에서 벗어나 더 이상 몸의 정욕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었지만, 그들의 영은 아직 혼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았다. 몸의 정욕을 이기기 전에 그의 혼이 몸과 결합(한 생명과 한 성품)된 것같이 이제 그의 영도 그의 혼과 결합(하나는 능력을 내고 하나는 주장을 낸다)되었다. 그러므로 혼은 늘 영에 영향을 준다. 영이 혼 안에 매몰된 것같이 혼에 의해 포위되었기 때문에 늘 생각의 자극의 영향을 받는다.

거듭난 사람은 본래 영 안에 말할 수 없는 평강이 있다. 그러나 영과 혼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극을 받아(이것은 혼이 자체의 독립된 욕망과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임)영 안의 평안함과 고요함을 잃게 된다. 때때로 혼에 충만한 기쁨이 그의 영에 영향을 준다. 이때 믿는 이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기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찔림을 받을 때 그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고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혼에 속한 믿는 이는 자주 이러한 체험을 갖는다. 영과 혼의 분리에 대한 가르침을 들었을 때 그들은 그들의 영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원한다. 그러나 온갖 방법을 사용해 보아도 영의 존재를 느낄 수 없는 듯하다. 많은 믿는 이들은 영 안에서의 참된 체험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영과 혼을 구분할 줄 모른다.

거기다가 영과 혼이 긴밀히 짜여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영과 혼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혼적인 자신의 체험―희락과 이상과 마음속에서 남을 사랑하는 것 등―을 최고의 영적인 체험으로 착각한다. 그런데 영적인 체험이 없으면 없다고 할 것이지 왜 혼으로 영을 대치하여 자신에게 손상을 입히는가? 믿는 이의 생활이 온전히 영에 속하지 못할 때 그는 좀 전에 우리가 말한 영과 혼이 섞인 체험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는 감정에 있어서 영 안의 고요함을 자기 만족으로 삼으려 하지 않고 감정적인 작용에서 나온 체험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의 생활은 직감의 인도를 따라 행했다가 또 순간적으로 자기의 사상과 이론과 욕망에 따라 행한다. 영과 혼이 섞인 이러한 체험은 믿는 이 안의 두 가지 근원을 나타내 준다.

곧 하나님께 속한 것과 사람에게 속한 것이고, 성령께 속한 것과 자아에 속한 것이다. 하나는 직감에 속한 것이고 하나는 사상에 속한 것이며, 하나는 영성에 속한 것이고 하나는 천연적인 것에 속한 것이다. 즉 하나는 영에 속한 것이고 하나는 혼에 속한 것이다. 완전한 데 이르기 전에 믿는 이는 이것을 따라 행하다가도 다른 것을 따라 행한다. 만일 믿는 이가 하나님의 빛 안에서 스스로 조심스럽게 살핀다면, 자기 속에 두 개의 생명이 있어서 때로는 이 생명을 따라 살고 다른 때에는 다른 생명을 좇아 산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어떤 때에는 믿음을 사용할 줄 알고 의뢰하는 마음도 있으며 성령에 의해 살기도 한다. 그러나 또 어떤 때에는 자신의 느낌 혹은 소위 영적인 느낌에 근거해 산다.

여기에서 차이점은 이러한 생활에서 혼 안에 있을 때가 영 안에 있을 때보다 많다는 것이다. 믿는 이의 혼에 속한 정도는 영의 생명과 영의 생명으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원칙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혼 생명을 좇아 행하고 결정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에 달렸다. 그 사람의 천연적인 생명이 그의 각 기관에서 얼마나 활동하고 있는가가 그 사람의 혼에 속한 정도를 결정해 준다. 어떤 사람은 완전히 느낌과 이상의 세계 안에 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혼에 의해 살다가도 영을 좇아 산다. 만일 믿는 이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영 안에서 성령께서 계시해 주신 것을 보지 못했다면, 그는 결코 혼에 속한 생명의 가증함을 알 수 없고, 온전히 영 안에 살려고 하지도 않는다. (영에 속한 사람,3부 1장)

마태복음 16장 24-25절, 고린도전서 2장 14절,혼적 영적,제자 자기,부인 혼생명,판단 껍질,통제 정욕,욕망 자아,가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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