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나에게는 이 우리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습니다. 내가 그들도 이끌어 와야 합니다.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입니다.(요 10:16)
And I have other sheep, which are not of this fold; I must lead them also, and they shall hear My voice, and there shall be one flock, one Shepherd.(John.10:16)
목자와 거룩한 생명과 사람의 생명은 모두 무리를 위한 것이다. 16절에서 주님은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유대인의 우리에 속하지 않은 양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이방인들이다. 이 한 무리는 무엇인가? 한 무리는 한 교회, 즉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지체들 안에 나누어주신 생명(10:10-18)에 의해 태어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상징한다(엡 2:14-16, 4:6). 전에 양 우리는 유대교였으나 지금 양 무리는 교회이다. 양 우리는 유대교였고 지금도 유대교이지만 양 무리는 교회이다. 양 무리는 두 백성, 즉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교회이다. 주님께서는 둘을 한 무리로 한 목자 아래 모으신다.
이제 한 무리와 한 목자는 한 몸과 한 머리이다. 왜 목자와 거룩한 생명과 사람의 생명이 모두 양 무리를 위하는가? 왜냐하면 양 무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구속이 필요한 타락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이신 목자는 사람의 생명을 가지셨다. 그분은 양 무리를 위해서 구속을 성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분의 사람의 생명을 희생하셨다. 이런 방법으로 그분의 양 무리는 구속되었다. 그런 후에 양 무리는 그분의 거룩한 생명을 영접했으며 이 거룩한 생명에 의해서 양들은 한 무리를 이루어 함께 산다. 그러므로 무리는 한 단위, 즉 한 존재가 된다. 이것은 사람의 생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룩한 생명에 의해 성취된다. 사람의 생명 안에서 우리는 정죄받고 분열되었다. 거룩한 생명 안에서 우리는 열납되고 연합되었다. 거룩한 생명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한 존재인데,
이는 우리가 한 생명 안에서 한 목자 아래 있는 한 무리라는 뜻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사람의 생명에 의해 살고 거룩한 생명에 의해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직 문제만 일으킬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양 무리에서 떨어져 나그네가 되어 방황할 것이다. 당신이 사람의 생명에 의해 살 때마다 당신은 더 이상 양이 아니라 나그네이다. 양은 거룩한 생명을 가진 거듭난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거룩한 생명에 의해 삶으로써 참되고 실질적이며 순수한 양들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 모두는 양 무리 안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람의 생명에 의해 사는 한 우리는 야생 동물을 닮을 것이며 집어삼키는 사자나 야생마와 같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거룩한 생명에 의해 살지 않는다면 양 무리를 이룰 수 없다. 양 무리는 거룩한 생명에 의해 산출되고 지켜지고 유지되며 형성된다.
형제들이 연합 안에 동거함이 얼마나 선한가(시 133:1)! 연합 안에 거함은 단순히 거룩한 생명 안에 거함을 뜻한다. 우리는 거룩한 생명 안에서 진실로 하나이며 서로 사랑함을 인해 주님을 찬양하자. 이것은 우리의 사람의 생명, 즉 수케의 생명 안에서는 불가능하며 오직 거룩한 생명, 즉 조에의 생명 안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수케의 생명을 버리신 우리의 목자에 의해 성취된 구속을 통하여 이 조에의 생명을 영접한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우리의 조에의 생명으로 영접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위한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그분의 수케의 생명을 희생하셨다. 이제 우리는 한 목자 아래 한 무리가 되어 조에의 생명 안에 있다. 이것은 조직이 아니라 생명 안에서 무리를 이루는 것이다. 놀랍다. 할렐루야! 무리를 이룸은 종교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이다. (요 LS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