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처리 (2)
하나님의 경륜
2014-05-29 , 조회 (1098)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더욱이 영원하신 영을 통하여 흠이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의 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도록 우리의 양심을 얼마나 정결하게 하겠습니까? (히 9:14)

How much more will the blood of  Christ , who through the eternal Spirit offered Himself without blemish to God, purify our conscience from dead works to serve the living God? (Heb. 9:14)

하늘에 속한 장부에는 한 항목밖에 없다. 당신은 내 말의 요지를 알겠는가? 당신이 다투고 이유를 댄다면 당신은 생각에 있는 것이지 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주님의 부름에 응답할 것을 요구하시면서 여러분의 영 안에서 움직이신다 하자. 수많은 이유들이 여러분의 생각에 홍수처럼 밀려온다. “아내는 어떻게 하나?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아이들의 교육 문제는? 게다가 여든이 넘으신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데, 좀더 기다리는 게 낫겠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이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일 것이다.”

이것은 혼의 생각 안에서 따지고 합리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아주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옳지만 깊은 영 안에는 여전히 주님의 부름이 있다. 혼과 영의 차이를 이해하기는 쉬우나 문제는 우리의 전 존재가 여전히 닫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이 아직도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나의 마음을 열기 원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가 마음을 처리하여 순수하고 단일하게 하였을 때, 우리의 양심은 매우 예민하게 되어 많은 비난과 거리낌을 느끼게 된다. 그럴 때 우리의 양심은 자백하고 주님의 피의 뿌림, 곧 정결케 하심을 적용함으로 올바르게 될 것이다(히 9:14).

우리의 양심이 깨끗하게 될 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우리의 양심에 많은 거리낌이 있을 때 그분은 우리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아니시다. 이런 경우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이름만 소유하게 된다.그러나 우리의 양심이 피로 인해 정결케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매우 생생하게 살아 계심을 느낀다. 때로 하나님은 마치 실제로 살아 계시지 않은 듯하다. 다만 ‘하나님’이라는 호칭만 있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때는 우리의 양심이 무디고 허물로 가득한 때이다. 양심은 자백과 정결케 함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그 이후에 우리는 비로소 순수한 양심을 갖게 된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순수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했다. 이것은 씻음받은 양심만이 아니라 어떤 것도 혼합되지 않고 어떤 그늘도 없는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뜻이다(딤후 1:3). 우리의 양심에 있는 비난은 양심을 불순하고 불투명하게 만들어 주님과의 교통을 방해한다. 순수한 양심은 선한 양심이기도 하다(딤전 1:5, 19, 벧전 3:16, 21). 선한 양심은 정결케 되고 순수하게 된 양심이다. 그것은 어떤 그늘도 없이 올바르고 투명한 것이다. 그렇게 선한 상태에 있는 양심은 우리를 주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 것이다. 양심이 정결케 되고 순수해졌기 때문에, 우리와 주님 사이에는 아무 장벽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 제 8장)

양심 정결,히브리서 9장 14절,부름 응답,합리화, 양심 거리낌,자백 전결,교통 방해,투명 순수,장벽

트랙백:  수신불가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