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깨끗케 하심
창세기
2014-06-09 , 조회 (124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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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 벧엘 아래쪽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되었다. 그래서 그 나무의 이름이 알론바굿이라고 불리었다.( 창 35:8)

And Deborah, Rebekah's nurse, died, and she was buried below Bethel under the oak; so its name was called Allon-bacuth.(Gen. 35:8)

8절은,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 바굿이라 불렀더라』고 말한다. 한 동안 나는 왜 이 중요한 시점에서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성경에는 쓸모없는 말이 하나도 없다. 드보라는 야곱의 어머니인 리브가의 유모였다. 리브가는 야곱이 돌아오기 전에 죽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드보라는 야곱에게 있어서 그의 어머니를 대신한 위안으로 매우 소중하였을 것이다. 야곱이 벧엘의 체험을 가진 바로 그 때에 그의 위안이었던 드보라가 하나님께 데려감을 당하였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증거할 수 있듯이, 우리가 이방 신들을 버리고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하고 우리의 의복을 바꾸어 교회 생활 안으로 들어왔을 때,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우리의 「드보라들」인 우리의 유모를 데려가신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에게 「드보라」, 곧 사랑하고 연민하며 달래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 생활 안으로 들어오던 날 하나님은 자동적으로 우리의 유모를 빼앗아 버리셨고 우리의 「드보라」는 죽었다. 교회 생활은 유모가 필요하지 않은 생활이다. 교회 사람들 중 누구도 유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 중 더러는 여전히 우리를 동정하고 달래고 위로해 주는, 유아를 돌보는 어머니 같은 유모를 두기를 좋아한다. 유모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한 말은 아기들을 두고 한 것이다. 그렇게 오래 교회 안에 있은 후에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을 품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든 사람들까지도 그들을 달래주고 돌보아 줄 「드보라」를 바란다.

그러나 참으로 우리가 벧엘을 위하여 주님과 함께하려 한다면 그분은 우리의 유모들을 제하실 것이다.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세 가지-우상, 귀고리, 유모-가 땅에 묻혀졌음을 본다. 모두가 상수리나무 아래 묻혔다. 상수리나무는 번성하는 생활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방 신들, 자기를 미화하는 것들, 유모들은 번성하는 생활 특히 교회 안의 생활 아래 묻혀진다. 이것은 교리가 아니라 우리의 체험과 일치하는 것이다. 교회 안의 생활은 상수리나무같이 번성하지만 그 밑에는 「드보라들」이 있다. 우리는 우상들을 버리고 귀고리들을 없애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드보라」를 죽게 하신다. 이것은 우리 편으로부터, 또 하나님 편으로부터의 참된 정결케 함이다. 우리는 버렸고 하나님은 빼앗아 가셨다. 우리는 이방 신들과 귀고리들과 더러운 것들과 의복들을 버렸고 하나님은 유모를 빼앗아 가셨다.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는 동정이나 간호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우리의 모든 「드보라들」은 장사되어야 한다. 드보라가 묻힌 상수리나무 아래는 「벧엘 아래」였다(8절). 이것은 버리는 것과 「드보라들」을 묻는 것에 관한 우리의 체험이 높은 수준에 있지 않음을 암시한다. 오히려 그것은 교회의 수준 아래에 있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가장 높은 수준에 있으며, 여기 교회 안에서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인격으로 체험함과 같은 최고 수준의 체험들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드보라들」에 대한 장사를 체험하는 것은 다소 낮은 것이다. 그것은 벧엘 아래에 있다. 그러므로 매장의 상수리나무는 알론 바굿─곡함의 상수리─이라 불리웠다. 이것은 우리가 즐거워할 만한 일이 아니다. (창 LS 78)

창세기 35장 8절,유모 드보라, 장사, 연민,우상 귀고리,동정 간호.벧엘,상수리나무,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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