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에 속한 믿는 이들의 생활 (2)
영에 속한 사람
2014-06-17 , 조회 (124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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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혼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그런 일들을 알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2:14)

But a soulish man does not receive the things of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to him and he is not  able to know them because they are discerned spiritually.(1 Cor. 2:14) 

그들은 사람들과 가장 친밀할 줄 알고 사람의 인정에 의지해 살며 남과 헤어지기 어려운 상태에 떨어진다. 만일 이러한 관계가 조금이라도 깨진다면 그는 혼 안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갖게 된다. 그는 이것을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은 혼에 속한 믿는 이의 약함―항상 자신을 중심 삼고 약간 영성의 진보가 있을 때 자신은 이미 남과 다르다고 생각한다!―을 아시기 때문에 여러 가지 특별한 은혜를 주시어 그로 초자연적인 체험을 많이 갖게 하시며, 한때 감정을 극히 기쁘게 하고 때로는 주님을 보는 듯 아주 친밀하고 확신이 있으며 무엇을 만지고 느끼는 듯하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이 그분의 은혜를 맛보게 하심으로써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가까이하게 하신다.

그러나 믿는 이는 하나님의 원함에 미치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을 가까이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자랑의 자본으로 삼는다. 그는 자신이 이러한 은혜를 입은 이유는 자신이 남보다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러한 체험을 가졌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신령하다고 생각한다. 혼에 속한 믿는 이는 감정적인 기쁨과 특별한 체험을 가질 때가 많다. 이러한 것들은 이것들을 소유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가 남보다 더 영적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바로 그들이 혼에 속했다는 증거인 줄을 모른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감정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때때로 혼적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바깥 세상의 사물이다. 그들은 이러한 일들에 의해 마음이 분란해진다. 세상 사람이나 일이나 물건들이 자주 그들 속 사람을 침입하여 영 안의 평안을 빼앗아 간다. 혼에 속한 믿는 이는 그를 기쁜 환경에 두면 기뻐할 것이고 슬픈 처지에 두면 근심하며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환경을 창조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가 접하는 사람들에 따라 변하기를 잘한다.  혼에 속한 믿는 이는 늘 감정적인 생활을 한다. 믿는 이가 아직 영에 속하기 전에 주님은 자주 그에게 감정 안에서 그분이 그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하신다.

그는 이러한 느낌을 가장 좋아한다. 이러한 느낌이 올 때 그는 이제 그가 최고 절정에 이르렀고 자신은 영적인 길에 들어섰으며 그 길에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주님께서 때때로 그에게 이러한 느낌을 주시지만 그가 아직 온전한 믿음 생활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은 아주 빈번하게 그분의 임재를 느끼게 하시면서 점차로 그가 느낌을 의지하지 않고 믿음을 의지하도록 그를 훈련시키신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뜻을 모르고 그러한 느낌이 생길 때를 영성의 최고 절정으로 생각하고 그렇지 않을 때 가장 저조하다고 생각한다. 혼에 속한 믿는 이의 가장 뚜렷한 표시는 말이 많은 것이다. 그도 말이 적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단지 때때로 감정의 작용으로 쉴 새 없이 끝없는 토론을 펼친다.

말에서 그에게 자제력이 아주 결여되어 있다. 그들의 입이 열릴 때 그들의 생각은 통제를 잃은 것처럼 보이며 한번 말을 꺼내면 폭포수같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것은 그들의 생각을 거치지 않았고 그들의 말은 마음 중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 말은 평상시에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다. 그들은 말을 길게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대화에서 고조되면 수습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이 말이 많을 때에는 그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며 마음속에서 그 사람을 은밀히 판단한다. 말이 많다 보면 잘못이 없기가 어렵다. 혹 변론이 나거나 이로 인해 남과의 화목이 깨진다. 혹 남을 비평함으로 사랑을 잃게 되거나 말이 많음으로써 수습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혼적인 믿는 이가 말이 많을 때에는 그의 대화 속에 우발적인 사상이 있기 마련이다. 돌변적인 이러한 사상은 그로 하여금 대화 주제를 바꾸게 하거나 말을 더 추가하게 한다. 혼적인 믿는 이는 성도에게 허탄한 말이 있어서는 안 되고 경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과의 대화에서 말하기를 좋아하고 농담 듣기를 좋아한다. 그는 활달하고 활기 있는 대화와 마음을 상쾌하게 하는 말들을 좋아한다. 농담을 잘하는 것은 혼적인 믿는 이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때때로 그도 경건치 않은 말을 미워하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감정이 자극될 때 그는 다시 자동적으로 환희의 길로 돌아가 통쾌한 것을 추구한다. (영에 속한 사람, 3부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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