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적인 믿는 이들의 일 (3)
영에 속한 사람
2014-06-20 , 조회 (139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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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혼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그런 일들을 알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2:14)

But a soulish man does not receive the things of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to him and he is not  able to know them because they are discerned spiritually.(1 Cor. 2:14) 

혼적인 믿는 이는 가장 자만하는 사람이다. 주님께서 그를 통해 한 사람을 구원하시면 그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그가 한 번 성공하면 그는 우쭐대면서 자기가 영적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조금만 알고 배워도 자기가 아주 높고 깊은 위치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혼적인 믿는 이의 가장 보편적인 표시는 그릇이 작아서 쉽게 채워진다는 것이다. 그는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를 관찰해 보지 않는다. 자기 물통 속에 물이 있기만 하면 자만해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모든 일이 임할 때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보잘것없는 자신을 주의하기 때문에 작은 득실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분량이 하나님께서 그를 더 크게 사용하지 못하시는 이유이다. 만일 그가 열 사람을 구원했다고 기뻐하면서 지나치게 자신을 자랑한다면,

천 명을 구원했을 때 어떻게 되겠는가?  혼적인 그리스도인은 전도의 일이 성공하면 자신이 아주 놀랍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남보다 뛰어난 부분을 자랑하고 스스로 즐거워하며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가장 큰 사도보다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놀랍다고 말한다. 때로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으로 인해 마음에 괴로워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이렇게 대우해 주는 것은 안목이 없기 때문이고 자기가 나사렛의 선지자임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때때로 그는 자기가 전한 메시지 중에서 어떠한 의미는 전에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청중이 자기가 놀랍다고 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일을 마치고서 그는 하루 이틀간 자만자족하거나 몇 시간이라도 스스로 만족감에 취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머지않아 그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 위대한 전도사나 대 부흥강사나 위대한 저자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일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지 않는다면 그는 얼마나 괴로워하겠는가? 혼적인 믿는 이는 원칙이 없는 믿는 이이다. 그의 언행은 일정한 원칙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의 생활은 감정과 생각에 따른 것이다. 그는 자기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한 행위는 평상시 행함과 크게 다르다. 일을 마친 후보다 혼적인 믿는 이의 변화를 더 쉽게 볼 수 있는 때가 없다. 만일 그가 어떤 교리를 전했다면, 그것을 전한 후에 그는 마치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도 된 것같이 생각한다. 만일 그가 인내에 관한 교리를 전했다면, 그것을 전한 후 하루 이틀 동안은 자신이 잘 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찬미할 것을 권했다면, 권한 후에 자신이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감정을 따라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감정이 자기의 말에 자극되어 그러한 생활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일단 감정이 지나가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혼적인 믿는 이의 한 가지 특별한 점은 그의 은사가 많다는 것이다. 죄에 묶인 믿는 이는 은사가 그리 많지 않고 영적인 믿는 이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혼적인 믿는 이에게 남보다 은사를 많이 주신 목적은 그가 능동적으로 모든 은사를 죽음에 넘기고 부활 안에서 다시 새롭게 더 영광스러운 것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믿는 이는 은사를 죽음에 넘기는 것은 아까워하고 그것을 힘껏 활용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혼적인 믿는 이는 은사가

자기의 것이나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를 의지하지 않고 그를 사용하시게 하지도 않으며 자기 뜻대로 행동한다. 또한 성공할 때에는 영광을 자신에게 돌린다. 이렇게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고 스스로 자랑하는 것은 은밀히 진행된다. 그가 아무리 겸손하게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도 자아를 중심 삼는 이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들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나 하나님에다 자기 자신을 추가시킨다.  그에게 은사가 많고 그의 사상도 좋기 때문에 그는 많은 사람의 흥미를 끌며 사람의 마음에 쉽게 자극을 준다. 그러므로 혼적인 믿는 이는 매우 매혹적이다. 주님의 일을 할 때 그는 일반 믿는 이들의 환영을 받는다. 그는 실제에 있어서는 영적인 능력이 부족하고 생수의 강같이 흐르는 성령의 능력이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국한되어 있다.

사람들이 본 것들은 그가 ‘소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있는 이것은’ 그에게만 머물고 다른 사람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지 못한다. 겉으로 볼 때 그는 매우 풍성한 사람 같다. 그러나 사실상 가장 메마른 사람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몇 마디를 추가하겠다. 즉 반드시 믿는 이가 죄의 억압에서 온전히 벗어나고 혼적인 믿는 이가 되어야만 이상의 체험을 갖는 것이 아니다. 믿는 이의 실지 체험에서 볼 때 많은 사람들이 한 면으로는 범죄함으로써 몸의 지배를 받고 또 한 면으로는 자기를 의지해 삶으로써 혼의 영향을 받는다. 성경의 가르침을 보면 이것이 더욱 분명하다. 혼적인 믿는 이와 육신에 속한 믿는 이는 모두 ‘육체’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때에 그들은 죄를 범하다가 자아를 좇고 육신에 속하다가 혼에 속하기도 한다. 정말 적지 않은 믿는 이들이 이렇다.

믿는 이가 죄를 범하면서 혼에 속할 수 있듯이 그도 또한 혼에 속하면서 영적인 체험을 가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믿는 이의 체험은 가장 복잡하다―이것은 세밀한 점을 말하는 것인데 전체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비천한 것들로부터 해방되었는가를 자문해보는 것이다. 만일 해방받지 않았다면 이는 우리가 여전히 비천한 것에 속해 있다는 증거이다. 영의 체험이 있다고 해서 신령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죄와 자아에 대한 체험이 없을 때 비로소 영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는 이가 혼의 놀라운 것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적지 않은 육신의 정욕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또한 그는 영에 대한 많은 체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혼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물론 한 영역에서 나와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영에 속한 사람 3부, 제 2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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