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제단
창세기
2014-06-25 , 조회 (293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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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자기와 함께한 모든 사람과 더불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렀다.야곱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그곳를 엘벧엘이라 고 하였다. 그것은 그가 자기 형을 피해 달아날 때,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그곳에서 계시해 주셨기 때문이다. (창 35: 6-7)

And Jacob came to Luz(that is, Bethel), which is in the land of Canaan, he and all the people who were with him. And he built an altar there and called the place El-bethel, because there God had revealed Himself  to him when he fled from his brother.(Gen.35:6-7)

벧엘에서 야곱은 제단을 쌓았다(6-7절). 제단에 대한 야곱의 체험은 진보적이었다. 벧엘에서 이상을 보았을 때(28:18-19) 그는 제단을 세우지 않았다. 비록 그가 그의 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뛰어나기는 했지만, 그는 단지 기둥을 세웠을 뿐이다. 밧단 아람(Padan Aram)에서의 수년 동안, 야곱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릴 수 있는 제단을 쌓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많은 계략들을 부려서 라반을 탈취하였다. 밧단 아람을 떠난 후, 야곱은 먼저 요단의 동쪽 숙곳(Succoth)으로 돌아왔다(33:17). 33장 17절과 18절에서 성경은 세겜(Schechem)을 말할 때처럼 숙곳이 「가나안 땅」 안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숙곳에서 야곱은 자신을 위하여 집을 지었고 그의 짐승들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세우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자기 자신을 관심하고 그의 짐승들을 관심했지만 하나님을 관심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결국 야곱은 숙곳을 떠나 가나안땅 세겜으로 여행하였고 그곳에서 그는 그의 장막을 치고 제단을 세웠다(33:18-20). 야곱은 그 제단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뜻하는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 불렀다. 이 제단은 야곱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체험에 관한 하나님에 따라 쌓아졌다. 그 제단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 부를 때 그는 사실 그것을 그 자신의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같다. 그들은 개인주의적으로 그들 자신을 위해 영적인 체험들을 추구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체험하는지를 배웠고 어떻게 개인주의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지를 배웠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엘 벧엘이 아니시다. 그분은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이심을 관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적다. 반대로, 추구하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관심한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셨던가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요? 오, 이 놀라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아마 그들의 창세기는 30장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35장으로 전진하여, 하나님이 더 이상 단지 개인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이심을 보아야 한다.  28장의 벧엘에서, 밧단 아람에서, 숙곳에서 야곱은 전혀 제단을 쌓지 않았다. 그는 세겜에서 제단을 쌓았다. 세겜에서 제단을 쌓은 것이 좋긴 했지만, 이 제단은 하나님의 집에서 쌓아지지 않았다. 그것은 교회 생활 안에서 쌓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교회 생활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세워졌다. 지도를 살펴본다면, 당신은 세겜이 벧엘에서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세겜이라는 단어는 힘을 상징하는 어깨를 의미한다. 야곱이 세겜에 이르렀을 때, 세겜은 강하게 하는 장소였던 까닭에 그는 강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세겜」에 이를 때 우리 역시 강하게 된다. 오늘 기독교 안에 있는 거의 모든 부흥들은 「세겜」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부흥들은 단순히 사람들을 강하게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강화시키기 위해 일 년에 한번 「세겜」, 즉 부흥을 필요로 한다. 어떤 부흥사들도 교회 생활을 관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그들을 강화시키는 것에만 관심할 뿐이다. 그들은 교회와 관계 있는 어떤 것도 다루지 않는다. 세겜에서 쌓은 제단은 단체적인 몸과 관계 있는 하나님의 이름 엘벧엘이 아닌 개인과 관계 있는 하나님의 이름 엘 엘로헤 이스라엘로 불리웠다. 더러는, 『세겜에서 강하게 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34장에서 야곱에게 일어난 것을 보라, 그가 세겜에 정착한 후 그에게 골칫거리가 생겼다. 그는 그가 거할 장막을 쳤고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제사드릴 수 있는 제단을 쌓았다. 야곱은 만족하였지만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34장의 체험은 필수적이었다. 말썽거리가 생겼고, 이 말썽거리는 야곱으로 하여금 평강이 없게 했다. 뒤이어 35장 1절에서 하나님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는 네가 세겜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강화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강화된 생활이 결코 나를 만족시킬 수 없다. 나는 교회 생활을 원한다. 나는 힘을 원치 않는다. 나는 하나님의 집을 원한다. 나는 네가 세겜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고 벧엘로 올라가는 것을 원한다.』고 말씀하시고 계셨던 것 같다.

 야곱은 벧엘에 도착한 후 제단을 쌓았고 그것을 엘 벧엘이라 불렀다. 제단에 대한 야곱의 체험에는 점진적인 진보가 있었다. 밧단 아람이나 숙곳에서는 전혀 제단이 없었다. 세겜에서의 제단은 그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한 것에 따라 세워졌다. 그것은 하나님을 단체적인 방법으로 체험한 것에 따른 제단이 아니었다. 하나님에 관한 개인적인 체험도 좋지만 그것은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개인적인 체험에서 단체적인 체험으로 계속 전진해야 한다. 제단은 헌신을 말한다. 아마 여러분 모두는 여러분 자신을 주님께 헌신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헌신은 어디에서 이루어졌는가? 세겜에서인가, 벧엘에서인가? 그것은 엘 엘로헤 이스라엘의 체험인가, 엘 벧엘의 체험인가? 교회 생활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나는 내 자신을 한 번 이상 헌신하였었다. 그러나 교회 생활 안으로 들어온 후 내가 한 헌신은 전의 어떠한 헌신보다도 휠씬 높은 것이었다.

교회 생활 전의 나의 헌신은 단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거룩하고 신령하고 이기고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교회 생활 안으로 들어온 후 나의 헌신은 달랐다. 당신이 혼자 살 때에는 그다지 많은 헌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혼한 후 당신은 당신의 배우자가 말썽꾸러기임을 알게 되고 이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고 당신 자신을 헌신해야 한다. 당신은 주님께, 『주님, 결혼전에 저는 거룩하고 신령하고 이기기 위하여 제 자신을 당신께 헌신하였습니다. 결혼한 지금 저는 이것을 위해 당신께 제 자신을 헌신해야 합니다. 저는 창문을 열고 싶어하지만 제 아내는 닫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조화하기 위해 제게는 헌신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러한 헌신은 새롭고 색다르다. 후에, 당신에게 자녀들이 생기면 더 진보된 헌신을 필요로 한다. (창 LS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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