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약속 (2)
창세기
2014-06-27 , 조회 (145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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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하나님' 이다. 자녀를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 너에게서 한 민족과 여러 민족의 무리가 나오고 너의 허리에서 여러 왕이 나올 것이다. (창 35:11)

And God said to him, I am the All-sufficient God: Be fruitful and multiply; A  nation and a company of nations shall come from you, And kings shall come forth from your loins. (Gen. 35:11)

혹시 내가 늦어지게 되더라도,  그대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기반입니다.(딤전3:15) 
 But if I delay, I write that you may know how one ought to conduct himself in the house of God, which is the church of the living God, the pillar and base of the truth.(1 Tim. 3:15) 
 

셋째, 두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본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야곱에게 하신 그분의 약속에서 반복된다. 28장에서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명확하지 않다. 28장 14절에서 하나님은,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야곱이었다면 나는, 『주여, 나는 내 후손이 티끌같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보다 내 후손이 수백만의 티끌 미립자와 같이 되기를 원하오며 차라리 몇 명의 왕들을 두기 원합니다.』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28장에서의 하나님의 약속은 티끌을 말씀하시지만, 35장에서의 그분의 약속은 왕들과 국민들을 말씀하신다(11절). 국민(nation)은 왕국을 가리킨다. 35장 11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17장 6절에서의 그분의 약속의 반복이다. 두 가지 예에서 그분은 국민들과 왕들이 나오리라고 약속하셨다.

벧엘에서 꾼 야곱의 꿈에서 하나님은 그분에게 그의 씨가 티끌과 같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제 35장의 벧엘에서의 실지적인 체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전진하였다. 여기서는 티끌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 티끌 대신 국민들과 왕들이 있다. 이 장에서의 약속의 초점은 왕들과 더불어 국민들을 낳을 수 있도록 열매 맺고 번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7장과 35장은 이 세 방면에서 서로 일치한다. 신성한 명칭의 계시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하나님으로 일치하고, 사람의 이름이 바뀌는 것에 있어서 일치하며, 왕들과 국민들을 산출하기 위한 번성의 약속에 있어서 일치한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하나님이라는 명칭의 목적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의 건축을 목적으로 하신다. 우리 모두는 이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하나님은 벧엘의 건축을 목적으로 하신다. 하나님은 교회 생활을 위하여, 땅 위에 그분의 집의 건축을 위하여 모든 것을 충족시키신다. 당신은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개인주의적인 방법으로 체험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하나님을 체험하려면 벧엘 안에, 하나님의 집 안에, 교회 생활 안에 있어야 한다. 이 진리는 우리의 체험으로 증명된다. 교회 생활로 오기 전에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관하여 어떤 체험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증거할 수 있듯이, 우리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하나님을 체험하지는 못하였다. 비록 내가 다양한 방면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긴 했었지만 교회 생활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그분을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분으로 체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교회 생활 안에 있은 후, 나는 『할렐루야, 내가 교회 생활 안에서 누리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하나님의 체험은 얼마나 놀라운가!』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분이시므로 단지 몇몇 개인적인 믿는이들에게만 체험될 수 없으시다.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너무도 제한되어 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단체적인 몸을 필요로 한다. 그분의 이러한 방면을 체험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집이 필요하다. 최근, 우리는 이곳 아나하임에서 놀라운 기도 집회를 체험하였다. 내가 믿건대 그 집회는 영원토록 기념비로 남을 것이다. 기도 가운데 모든 사람이 하는 말이 하나였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 우리는 해산하는 여인과 우세하고 이기는 사내아이에 대해 기도하였다. 그것은 놀라왔다! 우리는 우리 개개인의 방 안에서 홀로 이와같은 기도를 결코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 그 기도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지방의 모든 성도들은 확실히 대단한 것을 놓쳤다.

이것은 엘로힘이나 여호와의 체험이 아니라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전능한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다. 그 기도 집회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누리며 삼층천 위에 있었다. 오직 교회 생활 안에서만 우리 하나님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심을 인식할 수 있다. 우리를 비평하는 사람들로부터의 반대를 들을 때, 나는 그들을 향하여 미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깊은 동정을 느낀다. 그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가! 그들의 전통적인 종교는 그들을 좌절시키고 있으며 하나님의 최신의 움직임으로부터 그들을 격리시켜 놓고 있다. 그분의 현재의 움직임 안에서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전능한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운지! 이것은 가르침이나 교리적인 이해가 아니다. 그것은 교회 생활 안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체험이다.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벧엘의 건축을 위하여 계시되었고, 그분은 교회 생활 안에서 체험된다. 구약의 용어 「하나님의 집」에 대한 신약의 해석은 「교회」이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 바울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말했다. 오늘 우리에게, 벧엘은 역사(歷史)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이다. 구약의 벧엘은 교회 생활의 실지적인 체험에 대한 예표이다. 오늘 기독교 안에 있는 빈곤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벧엘을 과거의 역사로 생각한다. 그들은 오늘 교회 생활이 벧엘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교회 생활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의 회복 안에서 우리가 교회 생활을 누림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라!

교회 생활 안에서,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체험은 매일매일, 심지어 매분마다 증가하고 있다. 아나하임에서 우리의 교회 생활은 지난 이 년만에 대단히 증가하였다. 1977년 1월과 1975년 1월을 비교할 때 그 차이를 알 것이다. 분명, 1977년은 주의 회복 안에서 대단한 해가 될 것이다. 이 해 10월에 타이빼이에서 교회들의 국제 집회가 있을 것이다. 오직 주님만이 그 시간에, 혹은 심지어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아신다. 나는 매우 의미 있는 몇가지 일들이 일어나리라 믿는다. 교회 생활은 계속 행진하고 있다. 그것은 밤낮 전진하고 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교회 생활이 그 날 오후 이래로 전진하여 왔음을 증거할 수 있다. 할렐루야,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오늘의 벧엘인 교회 생활을 위하여 계시되었다. (창 LS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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