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사람의 필요―생명의 부활 (3)
요한복음
2014-06-28 , 조회 (173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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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사로가 병들어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예수님은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셨다. (요 11:6)When therefore He heard that he was sick, He remained at  that time in the place where He was for two days.(John. 11:6)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 것이고," (요 11:25)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ho believes into Me, even if he should die, shall live;(John.11:25)

주님은 병을 치료하지 않으셨고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셨다. 그러므로 부활을 통한 생명의 원칙은 주님께서는 항상 죽은 사람을 소생시킨다는 것이다.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을 치료하기 원하신다고 생각하는가? 주님은 당신을 소생시키기를 원하신다. 옛 관념에 따르면 치료는 당신을 개조하거나 개선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당신의 행동을 개선시키거나 규제하기 위해서 오시지 않는다. 그분은 항상 당신을 소생시키기 위해 오신다. 주님의 유일한 의도는 소생시키는 생명이신 그분 자신을 당신 안에 나눠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님은 나사로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즉시 가시기를 거절하셨다. 그분은 나사로가 완전히 죽고 장사될 때까지 기다리셨다. 그분은 나사로의 사람의 생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리셨다. 나사로는 완전히 죽었기 때문에 무덤에서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 때가 주님이 오실 때였다.

주님은 치료의 원칙으로 오시기를 거절하셨기 때문에 그 때 전에는 오시지 않았다. 그분은 오직 부활 안에 있는 생명의 원칙으로 오셨다. 자신의 성질이 나쁨을 발견한 종교적인 형제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가 나쁜 성질의 질병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구원받은 후에 자신이 너무 개구쟁이임을 발견한 어린 소년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도 또한 병든 사람이다. 그는 짓궂은 행동의 질병이 있다. 또 다른 믿는이는 자신이 농담을 너무 많이 하며 농담의 질병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 모든 병자들이 그들의 질병을 발견한 후 주님께 그들의 질병에 관해 소식을 보낸다.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말한 마르다와 같이 그들도 또한 나쁜 성질과 나쁜 행동과 농담하는 병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주님이 그들의 성질을 좋은 성질로 개선시키고 나쁜 행동을 좋은 행동으로 개조시키며 그들의

농담을 바로잡음으로써 그들을 치료해 주시기를 원한다. 농담이 바로잡히기를 원하는 형제는, 『오 주여, 내 입을 막으소서!』라고 기도한다. 다시 말하면 이 사람들은 병들었으며 치료해 달라고 주님께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당신을 치료하기 위해서 오시지 않는다. 당신이 성질을 치료받기 위해서 기도하면 할수록 당신의 성질은 더 나빠질 것이다. 주님은 결코 치료하기 위해 오시지 않으며 당신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며 또 기다리신다. 그분은 치료받기 위한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며 당신의 질병이 사망으로 변할 때까지 기다리실 것이다. 그분은 당신이 병들었을 뿐 아니라 죽었음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실 것이다. 주님은 당신이 그분께 소망이 없다고 말할 때까지, 즉 당신이 자신을 위한 모든 소망을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실 것이다. 당신은 아직도 개선하려는 소망이 있는가?

당신은 정말로 자신에 대해 실망했는가? 나는 여러분 개개인이 자신을 위한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을까 두렵다. 많은 경우에 당신은 마르다와 나사로 같다. 한면으로 당신은 병든 나사로와 같고 또 한면으로는 주님께 알린 마르다와 같다. 당신은 주님이 당신의 상태를 개선시키기 위해 오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당신의 병을 주님께 알린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이런 종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심을 우리 모두는 간증할 수 있다. 당신이 개선하려고 하면 할수록 주님은 더욱 멀어진다. 어느 날 당신은 마침내 완전히 소망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오직 사망의 물을 담은 그릇일 뿐임을 발견할 것이다. 모든 것이 사망으로 가득하며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단지 사망의 물로 가득 찬 여섯 개의 물항아리 중의 하나이다. 당신은 완전히 사망 안에 있으며 당신 안에는 사망의 물이 있을 뿐임을

깨달을 때 주님은 당신을 소생시키기 위해 오실 것이다. 당신은 죽었고 장사되었고 심지어 악취마저 풍긴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 때 주님은 당신을 소생시키기 위해 오실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 자신이 선해지고 개선되려고 노력하는가! 그러나 주님은 당신이 냄새가 나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악취를 풍길 때까지 기다리실 것이다. 주님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악취를 맡을 때까지 기다리실 것이다. 그때 주님은 당신을 소생시키기 위해 부활 안에 있는 생명의 원칙 안에서 당신에게 오실 것이다. 기독교는 사람들을 개선시키고 개조시키며 그들의 행동을 규제하려고 노력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이 원칙에 반대되게 행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생명이며 그 생명으로 사람들을 소생시키기 위해 오신다. 그분은 생명이신 그분 자신으로 그들을 거듭나게 하고 부활시키려고 오신다.

어떤 사람의 행동을 개선시키고 개조하며 규제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다만 원래의 자신을 사용하여 원래의 사람을 낫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재생산하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원래의 사람을 치료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은 원래의 사람이 죽기까지 기다리신다. 그러므로 당신이 사망의 물로 가득하여 사망의 냄새를 풍길 때 주님은 당신을 재창조하기 위해 오시며 사망으로부터 생명이신 그분 자신 안으로 부활시키기 위해 부활 안에서 오실 것이다.  요한복음의 원칙은 부활 안에 있는 생명이신 그리스도이다. 이 복음서의 의도는 우리의 행동을 규제함으로써 우리를 개선시키거나 개조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유일한 의도는 우리 안으로 생명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생명은 우리를 소생시키고 거듭나게 하며 부활하게 하며 재창조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복음서의 원칙을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의 목마름은 해결되고 배고픔은 만족되고 어둠은 밝아지고 죄의 속박은 깨뜨려지고 사망은 부활에 의해 삼켜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 영 안에서 우리의 부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함과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속한 어떤 것이나 우리의 어떤 행위에 의해서 사신 그리스도를 결코 체험할 수 없다. 사신 그리스도는 오직 그 영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체험될 수 있다. 영과 말씀은 우리를 부활 안에 있는 생명의 원칙 안으로 데려갈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영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그분을 취한다면 우리는 만족하고 밝아지고 해방되며 부활할 것이다. 우리가 사망에서 부활할 때 우리는 사망의 모든 방면에서 구출된다. 우리가 부활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우리를 억누를 수 없고 제한할 수 없고 가둘 수 없다. (요 LS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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