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음모와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
요한복음
2014-06-28 , 조회 (194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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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멸망하지 않는 것이 그대들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요 11:50)

Nor do you take account of the fact that  it  is expedient  for you that one man die for the people and that  not  the whole nation perish. (John.11:50)

주님은 그분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서만 죽은 사람을 일으키셨다. 이것은 오늘날 그분의 교회 가운데에 있는 전형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분을 열렬히 사랑하는 믿는이들의 무리에게만 부활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의 부활 능력에 관한 소식이 유대교와 같은 종교의 무리에게 전해졌을 때 반응이 일어났다. 종교의 무리는 오직 주님께 분을 내고 그분을 붙잡아 죽이려고 했다. 11장에 있는 유대교는 심지어 오늘날의 기독교가 다른 사람들에게 부활 생명을 가져오려는 주님의 갈망을 심히 반대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많은 경우에 기독교는 생명이신 주님을 쫓아냈다. 이 마지막 때에 주님은 그분을 열렬히 사랑하는 무리와 더욱더 함께하신다.

그 결과 그분은 사망에서 사람들을 일으키기 위해 많은 일을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 소식이 종교의 무리에게 퍼질 때 그들은 부활 생명이신 그리스도께 분을 내고 반대할 것이다. 나사로의 부활의 때가 유월절의 때와 일치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월절이지만(고전 5:7) 종교의 무리는 또 다른 유월절을 가지려고 했다.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유월절을 지킴으로써 유월절의 실제를 말살했다. 다시 말하면 참 유월절이신 그리스도는 유월절의 실제이시다. 한면으로 종교인들은 유월절을 지키기를 원했으며, 또 한면으로 그들은 유월절의 실제를 없애기를 원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이 원칙은 동일하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와 관계된 많은 것들을 하지만 그리스도의 실제를 버린다. 한면으로 기독교는 그리스도에 관해 전파하지만 또 한면으로는 그리스도의 실제를 파괴한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망의 상황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분의 부활 능력을 나타낼 수 있게 했고 이 부활 능력이 죽은 사람을 일으켰음을 우리는 보았다. 그러나 나사로가 일어남으로써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그 소식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렸을 때 그들은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했다(11:45-57). 바리새인들이 주 예수님에 대해 모의를 하고 있을 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예언적인 말을 했다.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11:49-50).

그 다음 구절은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로 모으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11:51-52)고 말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로 모으기 위하여」라는 어구는 주님의 죽음뿐 아니라 부활 생명이 하나님의 자녀의 건축을 위한 것임을 뜻한다. 이 모든 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부활 생명이 하나님의 흩어진 자녀들로 하여금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로 건축될 수 있도록 함께 모일 수 있는 상황을 일으키실 것임을 뜻한다. 종교의 음모는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돕는다. (요 LS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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