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
갈라디아서
2014-06-29 , 조회 (29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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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영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인자와 선함과 신실함과 온유와 자제이니, 이런 것들을 반대할 율법이 없습니다.(갈 5:22-23)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long-suffering,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Meekness,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Gal.5:22-23)

육신이 하는 것은 생명이 없는 「일들」이고 그 영이 산출하는 것은 생명이 가득한 「열매」이다(갈 5:22). 그 영의 열매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 영에 대한 다른 표현이며, 여기서는 그 예(例)로 아홉 항목만이 열거되어 있다. 더 많은 항목들이 있다. 즉 겸비(엡 4:2, 빌 2:3), 긍휼(빌 2:1), 경건(벧후 1:6), 의로움(롬 14:17, 엡 5:9), 거룩함(엡 4:24, 눅 1:75), 순수함(마 5:8)과 다른 미덕들이 포함된다. 에베소서 4장 2절과 골로새서 3장 12절에 있는 겸비는 온유와 다른 미덕으로 언급되는 데 이것이 여기에 열거된다. 로마서 14장 17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은 오늘날 하나님의 왕국의 모든 방면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의를 뺀 평강과 희락만이 열거되어 있다. 베드로후서 1장 5절부터 7절까지에서의 경건과 인내는 영적 성장의 특징인 절제와 사랑과 함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기에 열거되어 있지 않다. 마태복음 5장 5절부터 9절까지에서의 의로움과 긍휼과 순수함은 오늘날 왕국의 실제의 조건인 온유와 평강과 함께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미덕들도 여기에는 나와 있지 않다. 육체가 옛 사람 아담의 표현인 것같이 그 영은 그리스도의 실현이다. 그리스도는 실지로 그 영 안에 살아 있다. 여기에 열거된 그 영의 열매의 아홉 가지 모양들은 바로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그 영의 열매는 생명이 충만하며, 생명 없는 육체의 일들과 대조적이라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더구나 열매는 단수로서, 생명의 유일한 열매이다. 반면에 일들은 복수이다. 일들은 여러 가지이고, 열매는 단 하나이다. 그 영의 열매는 내주하는 영의 여러 다른 표현을 포함한다. 그 영의 열매의 아홉 가지 모양을 열거한 후에 바울은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23절)고 선포한다.

 바울이 「이것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이같은 것」이라고 말한 것을 유의하라. 그가 「이것들」이라고 말했다면 그 영의 열매는 이 구절들에게 열거된 아홉 가지 항목에 국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이같은 것」이라고 말한 사실은 그가 예로 든 아홉 가지보다 더 많은 모양들이 있음을 가리킨다. 바울은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율법은 악한 것을 정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영의 열매는 그 어떠한 모양이라 할지라도 악하지 않기 때문에 이 생명의 열매를 금지할 법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미덕과 그 영의 열매인 미덕들을 구분해야 한다. 사랑은 그 영의 열매의 한 모양이다. 우리가 거룩한 생명을 받고 구원받기 전에도 우리에게는 사랑할 능력이 있었다. 또한 우리는 여기에 열거된 다른 미덕들뿐만 아니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도 얼마만큼은 알고 있었다.

교회 생활 안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미덕도 가지고 들어왔다. 이것은 우리가 타고난 사랑과 친절과 신실함과 온유를 교회 생활 안으로 가져왔음을 의미한다. 가령 어떤 믿는이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타고난 자제력을 발휘했다 하자. 아마 그는 그럭저럭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의 자제에는 무척 많은 힘이 들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자제와, 그 영의 열매인 자제에는 큰 차이가 있다.  타고난 품성에는 하나님께 속한 어떤 것도 포함하지 않는 반면, 그 영의 열매는 신성하고 영적인 성분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이것이 그 영의 열매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 열매의 본질과 성분은 그 영이다. 교회 생활에서 필요한 것은 그 영의 본질이 충만한 사랑이다.

그 영의 요소는 또한 우리의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안에서도 발견되어야 한다. 이 모든 미덕들은 그 영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그 영은 그리스도의 실현이므로 그 영의 열매의 여러 방면인 이러한 미덕들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특성이요 표현이다. 이것은 이러한 미덕으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사는 것임을 의미한다. 타고난 품성과 그 영의 열매와의 차이는, 타고난 품성에는 그 영에 속한 것이 없지만 그 영의 열매에는 그 영의 본질과 요소가 충만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영 안으로 돌이키지 않고도 타고난 품성과 미덕을 따라 살 수 있다. 그는 자아를 따라서, 자아 안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자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 영의 열매의 여러 가지 모양을 갖기 원한다면 영 안에 있어야만 한다. 여기에 우리의 타고난 자아는 아무 소용이 없다.

연합된 영 안에서 행할 때, 우리는 여러 다른 방면들, 즉 모든 영적인 속성과 미덕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연합된 영 안에서 삶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그러한 생명 안에서 부요하여지고 높여지기를 바란다. 그러면 교회 생활 가운데 그리스도의 여러 표현들이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그 영을 따라 행하라고 권면하는 바울의 바램이다. 그 영을 따라 행할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육체 뒤에 있는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육체에 대한 싸움에서 이기면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하여 그 영을 따라 사는 것이다. 오늘날 주님의 회복에 필요한 것은 여러 가지 많은 미덕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하여 그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갈 LS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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