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성경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을 자세히 연구하는데, 이 성경은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생명을 얻기 위하여 나에게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요 5:39-40)
You search the scriptures, because you think that in them you have eternal life; and it is these that testify concerning Me.Yet you are not willing to come to Me that you may have life.(John 5:39-40)
이제 우리는 종교의 헛됨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종교는 외면적인 이름만 있다(2:17). 며칠 전 나는 이발을 하려고 이발소에 간 일이 있다. 그때 이발사는 크리스마스 미사[가톨릭교의 성체(聖體) 성사(聖事)-역자 주]에 참석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기회를 얻어 그 사람에게 몇 명쯤 모이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것은 종교적인 의무입니다. 어떤 사람은 크리스마스 때에 일 년에 한 번만 미사에 참석하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종교가 헛되다는 일례(一例)를 볼 수 있다. 즉 가톨릭 신자(信者)라는 이름 때문에 종교적인 의무로써 일년에 한 번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어떠한 종류의 신자인가?
단지 겉으로 이름만 있는 신자인 것이다. 만일 당신이 진정 영 안에 있다면, 즉 진정한 신자라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실제는 없으면서 다만 겉으로 이름만 있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헛된 것이다. 종교가 헛되다는 둘째 방면은 밖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2:17-18). 단지 외부적인 지식이나 밖의 의문(儀文)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내적인 지식이요, 우리 영 안에 있는 지식이며, 우리의 속으로 퍼지는 지식이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내면적이고도 주관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종교가 헛되다는 셋째 조항은 성경을 겉으로 갖고 있다는 점이다(3:2).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갖고 있지만 이 성경은 대부분 그들에게 미신적(迷信的)인 책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이 성경을 미신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가까이 놓지 않고는 잠자리에 들어가기가 두렵다고 한다. 그들은 성경을 베개 옆이나 책상 위에 놓지 않고는 밤에 편히 잘 수 없으며 그들이 잘 때 성경이 귀신을 쫓아 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미신이다. 또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생활의 안내자로 삼기 위해 별난 방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성경 한 군데를 단번에 펴서 어떤 구절을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으로 짚고 나서 그 구절에 적혀 있는 내용을 따르는 것이다. 나는 전에 한번 이렇게 성경을 미신적으로 믿는 어떤 사람이 성경을 펴서 자기 손가락으로 짚은 곳이 유다가 목매어 죽었던 구절(마 27:5)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가 과연 무슨 짓을 하였는지 궁금하다.
성경을 이와 같이 다룬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며 전적으로 미신적인 것이다. 이러한 헛된 짓은 모두 없어져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정통적(正統的)인 유대인들이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이와 같이 미신적으로는 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실제적이고도 생생한 방법으로 누리지 못한다. 그들은 의문(儀文)에 있는 교훈에만 관심을 두며 살아 있는 분인 그리스도는 주의하지 않는다. 요한복음 5장 39절, 40절에서 주 예수님은 유대의 종교인(宗敎人)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지식을 위해서 성경을 상고(詳考)하거니와 생명을 얻기 위해서 내게 오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똑같은 부류(部類)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들에게서 생명과 실제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롬 LS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