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결정연구를 마치고
누림글♧
2014-07-09 , 조회 (656) , 추천 (1)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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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의 꿈으로 시작해서 형상과 통치권으로 마치는

창세기 결정연구 전체를 마쳤습니다.

1. 꿈의 성취

꿈의 원칙은 불가능한 어떤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으로

사실 우리는 인간적인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야곱의 꿈, 요셉의 꿈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교회생활 안에 들어오며 꿈을 꾸고,

또한 야곱과 같이 외롭고 고난받는 상황에서 꿈을 꾸고,

이 사역으로 도움으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사실 아직 성취되지 않았고,

어쩌면 요셉같이 다른 사람의 꿈은 잘 해몽하는데

정작 내 꿈은 이루어지는 것 같지도 않아 힘이 빠질 때도 있지만,

이번 훈련을 통해 우리의 꿈이 벧엘의 꿈,

하나님의 집에 대한 꿈 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우리는 다만 꿈만 꾸는 자가 아닌,

꿈을 성취하기 위해 벧엘의 실재 교회생활 안에서,

순간 순간 사다리가 있는 영으로 돌이켜서

하늘문을 통해 은혜의 보좌를 접촉하고,

요셉과 같이 감옥과 같은 상황에서도 내 꿈만 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꿈, 곧 하나님의 경륜에 속한 진리들을 계속 말할 때,

벧엘, 교회, 그리스도의 몸, 새 예루살렘이 실재가 될 것입니다.


2. 파쇄되어야 변화되고 건축되고 동역할 수 있음

변화를 일반적으로 생각하다가 이번 집회를 통해

파쇄와 관련되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변화,  변화를 말하고 있지만 야곱의 일생을 보니

20년간 다루심만 있었지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들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교회생활 20년은 작은 것이 아닐 것이고

많은 환경과 일과 사람들을 통해 다루심을 받았을 텐데...

정작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루심과 파쇄를 위해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이 왔을 때,

W. N 형제님처럼 어떤 공과를 배우고

어떤 주님을 체험했는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환경자체가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야곱의 넙적다리가 붙어있는 엉덩이 뼈가 파쇄될 때,

타고난 생명, 겉사람을 강렬하게 치셔서 파쇄를 체험할 때,

매우 값지게 여기고 있는 우리의 옥합들이 깨어질때,

타고난 생명은 감소되고 하나님의 생명의 요소가 더해지고 흘러나와

변화되고 그래서 건축되고 동역할 수 있는

선결조건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 장자권을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

특히 장자권에 대한 인상이 깊었던 집회였습니다.

우리는 표현하고 대표하는 출생에 의해 얻은  권리가 있고,

장자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나의 것이 아닌 장자권을 빼앗으려 하지 말고,

또한 이미 있는 것을 빼앗길까 염려하여 분투하지도 말라!

그러나 장자권을 귀하게 여기고 배우고 누리고 사용해야 하지만,

에서 같이 죽 한그릇같은 하찮은 것에 장자권을 팔거나

르우벤 같이 더럽혀짐으로 장자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이들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대신에

보아스같이 내 장자권만 위하지 않고

그들의 장자권도 귀하게 여기고 관심하여

댓가를 지불하여 구속해 줘야 합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어진 땅을 누리기 위해 싸웠듯이,

성도들이 주어진 몫을 누리도록 싸우기도 해야 합니다. 

사용하고 누리게 할 때 장자들의 교회 안에서

축복을 미리 맛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잃어버린 장자권을

희년을 선포함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4. 신성한 망원경을 사용해야

우리가 최악(전갈, 거북이, 두더지) 이라고 생각하는 성도들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돌이키게 하였습니다.

요셉도 최악의 형제들도

다만 생명의 한 곡식단이라는 것을 보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신성한 관점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의 들보가 가득한 초 현미경 같은 눈으로는 보이지만

발람이 이스라엘을 잘못 말하려 해도,

엘리야가 하나님께 자기만 남았다고 고소해도,

교회의 약하고 낮음에 대해 기도로 말하고 비난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모든 성도의 결점은 없습니다.

우리가 요셉의 하늘에 속한 꿈을 보았다면,

오히려 성도들이 생명과 빛이 충만한 것으로 인해 찬양할 것이고

가장 먼저 생명에 먼저 참여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생명이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더 적게 할 것입니다.


5. 생명의 성숙

야곱의 역사와 요셉의 전기를 통해 우리는 어떤 사람이

생명으로 가득채워진 성숙한 사람인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채워지기 위해서는 비워져야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야곱은 32장에서 부터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떠밀려 들어갔고

이에 더하여 34장의 시므온과 레위가 일으킨 문제로

야곱의 존재의 깊은 부분이 만져졌고(30절),

35장에서 자신이 선택하고 깊이 사랑하는 라헬의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베노니를 베냐민으로 이름을 바꾸며(18절),

43장에서 베냐민을 이집트로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자식을 잃어야 한다면 잃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14절)

45장에서 요셉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누구도 책망하거나 원망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28절),

47장에서 파라오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서자마자 축복하며(7절),

48장에서 '오늘까지 일생동안 저를 목양하신 하나님(15절)이라고 하며,

손자들을 축복할 때 "나도 안다(19절)" 고 말하며

성숙한 한 사람의 인 나그네 길(47:9)의 삶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대할 때 인간적인 느낌과 감정이 가득했지만

자신의 감정과 느낌과 고려와 선호를

그 영의 통치 아래 두었습니다.

가장 능력있는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힘을 가진 사람"

자신을 이집트로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라것을 깨달은 사람,

평온한 생활, 깨어있는 생활, 분별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

다만 우리는 이런 과정 안에 두신 하나님을 경배할 뿐입니다.


6. 요셉의 완전한 삶에서 배움

그리스도의 온전한 삶의 예표인 요셉의 삶에서 몇가지 특징은?

지하감옥에서도 중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간증을 지키며

자신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꿈쟁이로서

계속 꿈을 간직하고 다른 사람의 꿈을 믿음으로 말하였습니다.

우리도 감옥같은 상황에서 그 시간을 단축시키려 하거나

피하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감옥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 곳에서 머물며 자신의 상황에 관계없이

우리가 가진 이상과 꿈을 믿음으로 말해야 합니다.

주관적인 고난과 징계를 인내를 통해 통과할 때

결국 감옥에서 풀려나고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도록

자격을 갖출 것입니다. 


7. 축복

변화는 타고난 생명이 바뀌는 것이고,

성숙은 바꾸는 신성한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고,

축복은 이 생명의 넘쳐흐름입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더 많이 누려

더 많이 그리스도를 갖고 가득채워져서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윗사람은 그리스도를 소유한 그리스도의 분량의 문제입니다.

움켜쥐고 빼앗는 손에서 우리는 축복하는 손이 되어야 합니다.

축복은 천연적인 책략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갈망과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타고난 관념은 주님의 축복하는 손을 방해한다는 것도...


8. 신성한 분배아래 있는 일상적인 생활에 만족함을 배움

다루고 파쇄하는 것은 주님의 손에 달린 것이고,

우리는 긍적적으로는 더욱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장자권을 사용하여 매일의 생활에서 신성한 분배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협력은 기질을 다루실 때 협력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말씀을 취하여 생명의 물로 기질을 씻고,

모든 성도들과 교통하고 섞임으로 차이점과 특이함을 처리 받고,

요셉같이 나실인의 생활을 살기 위해,

영 안에서, 영을 따라 살므로 타고난 애정에서,

주님을 우리의 누림과 오락으로 삼아 쾌락에서,

주님을 머리되심으로 취해 반역에서 구원받고,

신성한 생명으로 머리 끝 까지 채워져서

죽음에 여지가 없게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주제와 핵심을 이루는 길은

특별한 비법이나 빠른 길이나 쪽집게 과외가 없습니다.

이것은 생명 안에서 일상적인 반복적인 생활에서

점차적으로 조금씩 이루어 질 것이기 때문에

신성한 분배 아래 있는 다소 지루하고 평범한 생활에

만족하기를 배우고, 잠잠하고, 평온한 가운데

우리는 모르지만 조금씩 조금씩 분배를 받을 때

야곱과 요셉의 꿈이 우리의 꿈으로 실현되어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 지는 실재가 나타날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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