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위해 바울이 고난받고 은혜를 누림
빌립보서
2014-07-21 , 조회 (149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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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뿐만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또한 해로운 것으로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지식이 가장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고 합니다.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나온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나온 의입니다.(빌 3:8- 9) 

But moreover I also count all things to be loss on account of 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my Lord, on account of whom I have suffered the loss of all things and count them as refuse that I may gain Christ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my own righteousness which is out of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faith in Christ, the righteousness which is out of God and based on faith,(Phil.3:8-9) 

이 메시지에서 우리는 바울이 복음을 위해 고난받은 것과 은혜를 누린 것을 보기로 한다. 복음을 위해 고난받음과 은혜를 누리는 것을 천연적으로 이해하기는 쉽다. 그러나 영적인 것들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천연적이거나 전통적인 이해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빌립보서에 따르면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것과 은혜를 누리는 것은 둘 다 깊은 것이다.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이 땅에서 오직 하나님의 경륜의 유익만을 위하는 것이다.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의 완성을 주의하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경륜을 포함하며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에 참여하는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것은 실지로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는 데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의 글들은 그가 복음을 위해 고난받았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가 고난을 받으면서 전한 복음은 낮거나 표면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가 복음을 위해 고난받은 것은 땅 위에서 하나님의 경륜의 수행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단지 사람들에게 천당가기 위해 예수를 구주로 믿어야 한다고 전파하지 않았다. 그와 같이 제한된 복음 전파는 고난을 동반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바울은 종교와 율법과 문화와 의식과 관습과 습관 등 각종 주의(主義)를 거절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하나님의 경륜에서 벗어난 모든 것을 깨뜨렸다. 그의 복음은 종교와 정치와 문화를 깨뜨렸다.

어떤 의미에서 바울의 복음은 우리들까지도 깨뜨린다. 이러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바울은 문제덩어리로 여겨졌고 염병을 전염하는 자로 여겨졌다(행 24:5). 그의 복음 전파는 하나님의 경륜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깨뜨렸지만 바울은 그 복음을 평안의 복음(엡 2:17, 6:15)이라고 말했다. 에베소서 2장 17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 후에 이방인에게 와서 평안의 복음을 전하셨음을 지적했다. 평안이란 오직 복음에 위배되는 것이 멸절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와 하나님, 또 우리 서로간에 평안이 있으려면 종교와 정치와 문화와 형식과 율법이 끝나야 한다. 바울은 많은 것들을 깨뜨리는 것을 포함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그의 복음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기쁘게 하지 않았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게 할 수 있었다. 그의 복음은 종교나 정치나 문화나 각종 주의(主義)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만일 우리가 바울처럼 복음을 전한다면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사탕발림식으로 복음을 전한다면 우리는 우주적으로 환영받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고난받는 자들이 되지 못할 것이다.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것을 천연적인 관념에 따라 이해하지 말라. 우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의 유익을 위해 서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기 위해 주의 회복을 위해 남아 있는 한, 우리의 운명은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것이다.

주의 회복 안에서 전하는 복음은 오늘날의 종교의 반대를 당한다. 요한계시록 라이프 스타디에서, 우리는 계시록 2장과 3장에 따라, 유대교는 사탄에 속한 것이요, 천주교는 마귀적이요, 개신교는 그리스도가 없는 것임을 지적했다. 그러한 말이 어떻게 종교 안에 있는 그들을 기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단지 계시록에서 주 예수님이 사용하신 용어들에 동의한 것일 뿐이다. 주님은 「사탄의 회」(계 2:9)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분이다. 그러한 표현은 주님의 눈으로 볼 때 유대교가 사탄의 조직이 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주님께서는 천주교를 의미하는 두아디라에 관해서는 『사탄의 깊은 것들』이라고 말씀하셨다(계 2:24). 이러한 표현은 깊은 것, 즉 사탄에 속한 비밀을 언급한 것이다.

그와 같은 것들은 확실히 마귀에 속한 것이다. 라오디게아에 관해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문 밖에 서 계심을 볼 수 있다(계 3:20). 사실상, 우리가 개신교에 그리스도가 없다고 말한 이유는 그리스도가 문 밖에 서 계시기 때문이다. 유사한 관점이 토우저(A.W. Tozer 1897. 4. 21-1963. 5. 12)의 「교회 안에서 기울어져가는 그리스도의 권위」라는 제목의 글에서 표현되었다. 토우저의 글에서도 개신교에는 그리스도가 없음을 지적한다. 우리가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한다면 공격당할 것을 예상해야 한다. 복음 전파에 있어서 우리의 목적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요 그들을 공격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다만 하나님의 진리를 말해 내는 것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는 많은 것들을 깨뜨릴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위해 고난받을 것이다. 복음의 고난은 언제나 은혜의 누림을 동반한다. 당신이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고난받는다면 당신은 누림을 가질 것이다. 나는 우리가 당하는 많은 반대 가운데서도 참으로 주님의 은혜를 누림을 간증할 수 있다.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고난받는 것은 은혜의 공급을 가져온다. 은혜를 이렇게 누리는 것은 복음을 위한 고난과 연결되어 있다. 은혜를 누리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체험을 갖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리는 은혜는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기 때문이다. (빌 L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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