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위해 바울이 고난받고 은혜를 누림 (2)
빌립보서
2014-07-21 , 조회 (1568)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그럴 뿐만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또한 해로운 것으로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지식이 가장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고 합니다.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나온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나온 의입니다.(빌 3:8- 9) 
 
But moreover I also count all things to be loss on account of 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my Lord, on account of whom I have suffered the loss of all things and count them as refuse that I may gain Christ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my own righteousness which is out of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faith in Christ, the righteousness which is out of God and based on faith,(Phil.3:8-9)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은혜의 누림을 알고 있으리라고 믿지 않는다. 확신하거니와, 바울과 경쟁적으로 복음을 전한 유대교적 신자들은 은혜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전파는 그들의 누림을 위한 은혜이신 그리스도를 가져올 수 없었다. 또한 우리는 은혜란 바로 우리의 누림이 되기 위해 과정을 거친 바로 그 삼일 하나님이심을 지적했다. 어떤 분들은 은혜를 우리의 누림을 위해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이라 말하는 것이 참인지 아닌지를 의아해하며 은혜에 관한 이러한 이해에 대해 질문할지 모른다. 고린서후서 13장 13절의 바울의 말을 생각해 보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누림을 위한 삼일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은혜란 우리의 누림이신, 과정을 거치신,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이다. 우리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그러한 그리스도를 더욱더 누리게 된다. 만일 내가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있는 유대교와 천주교와 개신교에 대한 주님의 그러한 말씀을 말하지 않았다면, 의심할 바 없이 나는 복음 전파를 통하여 많은 친구들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유일한 친구인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시도는 결국 그분을 슬프게 했을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기쁨을 사람의 기쁨과 바꾸기를 원치 않는다. 빌립보서 3장의 바울과 같이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모든 것을 해(害)로 여긴다. 나는 또한 기꺼이 은혜의 누림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해(害)로 여김으로써 고난받을 것이다. 나는 주님으로부터 사람을 기쁘게 하는 위임을 받지 않았다.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한 타협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경륜에 반대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진리에 의해서 멸절되어야 한다. 바울같이,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빌립보서에 따르면, 바울은 단순히 복음을 전하여 고난을 받은 것이 아니라 특별히 복음을 변명하고 확정했기 때문에 고난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복음이 하나님의 경륜과 관련되어 있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이 땅에서의 그분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았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쓸 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륜의 이러한 복음을 곡해하고 왜곡시켜 전파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 안에서 유대교나 헬라 철학이 설 수 없음을 선포하기 위해 일어났다. 바울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해 세우심을 받았다(1:16). 더욱이 바울은 두 가지 비밀, 즉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를 전파함으로써 복음을 확정했다. 다른 이들도 그리스도를 전파했지만 그들은 이 비밀들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날 기독교 가운데 있는 상황과 같다. 많은 선교 사업과 복음 전파가 있으나 많은 복음 전파자들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합당하게 전파하지 않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를 위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은 더 적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회피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복음을 확정함은 많지 않다. 주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변명함에 대한 부담을 주셨을 뿐 아니라 복음을 확정하는데 대한 부담을 주셨다. 이것은 우리가 이 두 가지 비밀을 수행해 나가는 것을 주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반대를 당한다. 만일 당신이 복음을 변명하고 확정함 없이 피상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한다면 따뜻한 환영을 받을 것이다. 나의 사역 초기에, 나이 많은 어떤 목사님은, 내가 그들의 방법대로 복음을 전하면 마을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나를 환영하며 나를 기뻐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내가 전한 방법을 고집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상할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그는 나에게 선한 마음으로 충고를 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이 문제에 있어서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고 말했다.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복음을 위한 고난의 내 몫을 감당해 왔다. 그러나 고난과 함께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부요한 누림을 가졌다. 그분은 실로 나에게 누림을 위한 은혜이셨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교회 생활 안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누림의 가장 적은 부분도 알지 못했음을 간증할 수 있다. 당신은 교파에 있었을 때 그리스도에 대한 풍성한 누림을 가졌었는가? 교회 생활을 떠나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합당한 누림을 가질 곳이 없다.

당신이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교회 안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보다 더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는 곳을 다니며 찾아 보라. 1948년에 교회 생활에 불평이 가득찬 어떤 형제에게 나는 더 나은 곳을 한번 찾아보고 나도 그와 함께 갈 수 있도록 나에게 그런 곳을 가르쳐 달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그는 교회 안에서보다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이 더 많은 곳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결코 하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는 교회 생활 안에서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있으나 우리의 누림이 되기 위해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을 은혜로 누리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전파로 말미암아 깨뜨려진 것들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다. (빌 LS 3)


빌립보서 3장 8-9절,경쟁적,탁월 배설물,누림 발견,복음전파 고난,변명 확정,왜곡 혤라철학,피상적,환영

트랙백:  수신불가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