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생명의 표현
영에 속한 사람
2014-08-02 , 조회 (121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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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혼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그런 일들을 알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2:14)

But a soulish man does not receive the things of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to him and he is not  able to know them because they are discerned spiritually.(1 Cor. 2:14) 

이전에 우리는 혼의 표현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이제 총괄적으로 말하면, 혼 생명의 표현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천연적인 능력이고 둘째는 하나님께 굽힐 줄 모르는 강퍅한 마음이고, 셋째는 스스로 지혜 있다 하여 많은 의견과 계략을 갖는 것이고, 넷째는 감정에 속한 영적인 체험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1) 혼적인 생명 자체가 천연적인 능력이고, 혼의 기관이 2) 의지 3) 생각 4) 감정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혼의 주요 부분이 생각과 감정과 의지이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혼적이면서도 그들의 체험에는 각기 다른 점이 있다. 어떤 사람은 생각의 방면에 치우치고, 어떤 이는 감정의 면에, 또 어떤 이는 의지의 면에 치우친다. 이 몇 방면의 생활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이 몇 가지 방면은 다 혼에 속한 생활이다.

혹 생각에 치우친 어떤 믿는 이는 감정에 치우친 사람의 혼적인 것을 볼 수 있다. 동시에 감정에 치우친 사람은 생각에 치우친 사람의 혼적인 것을 발견한다. 사실상 이 두 사람은 다 혼에 속한다. 그러므로 믿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로 해방받기 위하여 하나님에게서 얻은 빛 비춤으로 자기의 참된 상태를 발견하는 것이다. 결코 새 지식을 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꺼이 하나님의 빛 비춤을 자기를 비추는 수단으로 삼는다면,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의 영적 생명은 현재와 같지 않을 것이다. 생각 속에서 진리를 갈구하고 받아들이거나 전파하는 것이 혼에 속한 가장 큰 표시이다. 가장 영적인 체험과 가장 높고 깊은 진리가 생각을 훈련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절대로 생명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을 살찌게 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이다. 믿는 이들이 혼에 속하고 생각의 지배를 받을 때 그들의 생각엔 영성의 오락이 가득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보다 자기의 사상을 더욱 의지한다. 그들이 생각으로 궁리하는 것이 기도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보다 더욱 많다. 가장 믿는 이들이 영적인 체험으로 착각하기 쉬운 것은 감정이다. 혼적이되 감정에 치우친 믿는 이는 그의 생명 안에서 언제나 느낌을 추구한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또는 신체의 기관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려 하고, ‘사랑의 불길’이 타는 것을 느끼게 하며, 즐거움을 느끼려 하고, 영성의 높은 상태를 느끼려 하고 일의 순조로움을 느끼려 한다.실지로 영적인 믿는 이에게는 때때로 이러한 느낌이 있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느낌을 의지하여 전진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감정에 속한 믿는 이는 이러한 느낌이 있을 때에만 주님을 섬길 수 있다. 그에게 이러한 느낌이 없을 때에는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다. 의지는 혼적인 생명의 일반적인 표현이다. 의지는 사람의 자주적인 기관이다. 혼적인 믿는 이는 의지를 통해 ‘자아’를 모든 사상과 말과 행동과 생활의 중심으로 삼는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이해하려고 한다. 또한 그는 자기의 누림을 위해 무엇을 느끼려고 한다. 그가 한 일들은 자기의 계획을 따른 것이다. 그의 행동의 목적은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의 중심은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이미 성경 안에 혼이라는 단어가 생물과 동물로 번역된 것을 본 바 있다. 원어에서 이 단어는 ‘동물의 생명’이다. 이것은 혼 생명의 표현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로 알게 한다.

혼적인 믿는 이의 생활과 일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말은 ‘동물의 활동’ 혹은 ‘동물의 활발함’이다. 이들은 계략이 많고 일도 많으며 생각이 분주하고 감정이 분란하며 전 존재의 안팎이 안정되지 못하고 분란하다. 그래서 감정이 자극을 받으면 온 존재의 다른 부분들도 이에 따라 흥분된다. 그러나 감정이 하락할 때, 비록 감정은 많이 침착해졌지만 그들의 생각과 자아의 뜻은 여전히 분란하다. 혼적인 믿는 이의 생활은 종일토록 활동하는 것이다. 육신이 활동하지 않으면 생각과 감정이 활동한다. 이러한 생명은 ‘동물의 활발함’이 충만한 생명일 뿐 하나님의 영적인 생명을 모든 것의 주로 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총괄적으로 말해서 혼의 일은 믿는 이가 천연적인 생명으로 살게 하고 자기 능력으로 일하며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주님을 알고 주님을 가까이하며 주님의 임재를 느끼게 한다.

또한 생각의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궁리하고 계획하며 추론하게 한다. 만일 믿는 이가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창조된 생명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그는 영성에서 가장 큰 손해를 입을 것이고 그의 일에는 참된 영적인 열매가 결여될 것이다. 믿는 이에게 자신이 창조된 동물의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적인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수치스런 것임을 알 수 있도록 성령의 계시해 주심이 필요하다. 야망이 가득한 어린아이가 자기를 자랑하고 우쭐대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듯 우리의 ‘동물적인 활동’에 대하여 동일하게 대하신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으뜸되는 자리에 서는 것보다 잿더미 속의 체험을 더 많이 갖기 바란다. (영에 속한 사람 3부, 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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