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중에도 자랑스러워 함
로마서
2014-08-02 , 조회 (154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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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 중에도 자랑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환난은 인내를 낳고,인내는 단련을, 단련은 소망을 낳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롬 5:3-4) 
 And not only so, but we also boast in our tribulations, knowing that tribulation produces endurance; And endurance,approvedness; and approvedness, hope;(Rom. 5:3-4)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함으로써 선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사람들을 그분의 아들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아들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롬 8:28-29) 
 And we know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those who love God, to those who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Because those whom He foreknew, He also predestinated to be conformed to the image of His Son, that He might be the Firstborn among many brothers; (Rom. 8:28)(롬 8:28-29)  
 

우리의 타고난 성품은 거룩해지고, 변화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환난과 고난을 가져온다. 이것은 로마서 8장 28절과 29절에 분명히 나타난다. 그 구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善)을 이루게 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환난과 고난은 우리의 변화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평강과 은혜와 영광을 누리기는 좋아하지만 환난은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 나는 오른쪽 눈을 두 번 수술을 받았다. 나는 그런 고통을 싫어하지만, 내가 선포하는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이 두 번의 수술보다 내게 더 유익했던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환난이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을 포함한 은혜가 육신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육신(肉身)이 되신 것과 비슷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가 단지 예수라는 사람이었지만 실제로는 그가 하나님이었다. 우리의 환경은 겉으로 보기에는 환난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은혜이다. 로마서 5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우리는 환난이 은혜와 같은 위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세 인격을 포함한 여섯 가지, 즉 사랑, 은혜, 평강, 소망, 생명, 영광은 환난 위에 있다. 환난은 바로 은혜의 방문이다.  만일 우리가 환난을 피하고 은혜만 누리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마치 예수를 싫어하고 하나님만 사랑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예수를 거절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환난을 거절하는 것은 은혜를 거절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은 육신이 되셨는가? 그분이 우리에게 오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육신(成肉身)은 그분의 은혜로운 방문이었다. 분명 우리는 하나님의 그러한 방문을 사랑한다. 우리가 그분의 방문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성육신(成肉身)을 사랑해야 한다. 환난은 우리를 방문하는 은혜의 성육신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랑하지만 또한 은혜의 달콤한 방문이자 은혜의 성육신인 환난에 입맞추어야 한다. 귀용(Guyon) 여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에 입맞추었다고 말했다. 십자가는 고난이요 환난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싫어한다. 그러나 귀용(Guyon) 여사는 십자가가 자기에게 하나님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오히려 십자가에 입맞추고 더 많이 오기를 기다렸다. 귀용(Guyon)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내게 십자가를 주시고, 십자가는 내게 하나님을 준다.』 그녀는 십자가를 환영했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있을 때 하나님도 있기 때문이다. 환난은 십자가요, 은혜는 우리의 누림을 위한, 우리의 기업이신 하나님이다. 이 은혜는 주로 환난이라는 형태로 우리를 방문한다. 환난의 경험은 견딤을 낳는다(롬 5:3 원문 참조). 견디는 것은 인내 이상이다. 그 이유는 견딤은 인내에 고난을 더한 것이기 때문이다. 견디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견딤은 환난의 고난으로 생겨난다.  우리는 생활의 작은 일에서도 이 견딤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것 중의 한 가지가 전화를 걸 때 통화 중의 신호가 들리는 것이다. 왜 나는 그것을 싫어할까? 그것은 내게 견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내가 싫어하는 것은 사람들이 약속 시간에 늦게 나오는 것이다. 그런 늑장은 나에게 괴로운 것이지만 나의 견딤에는 보탬이 된다. 견딤은 연단(鍊鍛)을 낳는다[롬 5:4, 회복역(Recovery Version) 에는 「인정받음」으로 번역됨-역자 주]. 연단은 환난과 시련을 견딘 결과 인정받는 자격이다. 그러므로 연단은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과 속성이다. 청년 형제들이 다른 사람의 인정받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인정할 만한 자격을 얻게 하는 견딤이 필요하다. 환난은 견딤을 낳고, 견딤은 인정받는 자격을 가져온다. 어떤 성경은 이 연단이라는 말을 「경험」으로 번역한다. 그것도 옳은 번역이다. 왜냐하면 연단은 경험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고난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속성(屬性) 내지는 덕성(德性)이다.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견딤이 있고, 그만큼 더 연단의 덕성이 생긴다. 연단이란 우리가 나면서부터 갖는 속성이 아니다. 자연금(自然金)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진짜 금(金)이기는 하지만 제련(製鍊)되지 않아서 보기에 흉하다. 그것은 제련하는 불이 필요하다. 그 금은 불을 많이 거칠수록 인정받는 품질이 될 것이다. 금은 태움과 시련을 통해 누구에게나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품질을 얻는다. 많은 청년들이 제련되지 않은 금 같을지 모른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광택을 내거나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 아니라 태우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어떤 성도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생명과 빛이 있다. 이런 것이 있으므로 주님의 일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연단이 결핍되어 있다. (롬 LS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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