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이의 어리석음
영에 속한 사람
2014-08-06 , 조회 (115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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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혼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그런 일들을 알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2:14)

But a soulish man does not receive the things of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to him and he is not  able to know them because they are discerned spiritually.(1 Cor. 2:14) 

많은 믿는 이들은 혼적인 체험의 해로움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범죄와 영성을 더럽히는 ‘육체의 일’에 속한 것들만 거절하고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 생명은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생명이다. 동물들도 이러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이 생명으로 사는 것이 정당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천연적인 생명으로 사는 것인데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말한다. 많은 믿는 이들이 헛되이 생각 안의 가르침만을 받는다면, 그가 반대하든 찬성하든 성경의 가르침은 그의 마음속에서 혼 생명을 마땅히 거절해야 할 이유들임을 발견하지 못한다. 예컨대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거나 죄를 범했다면 물론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선을 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의 안에 미덕을 계발하려 한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지금 그는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고 있기 때문에, 비록 그가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것들이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정하신 뜻이 아니라 그가 하는 것이며, 죄악된 것이 아닌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은 은사와 재능을 주셨다면 어찌 이것들로 일할 수 없단 말인가? 내가 일할 때가 나의 재능을 사용할 때가 아니란 말인가? 재능이 없는 사람은 말할 것이 없겠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도 그것을 사용할 기회를 얻지 못하겠느냐고 말한다.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은 것은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재 생각으로 성경의 의미를 힘껏 추구하는 것이 왜 틀렸는가? 성경을 읽는 것이 죄란 말인가? 현재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진리를 생각으로 연구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용하라고 생각을 주시지 않았단 말인가? 우리의 사상으로 궁리하고 하나님의 일을 계획하는 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인데 어찌 안 된단 말인가? 더욱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자 추구하는 것은 성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나의 생명이 메마르고 나의 일에 대해 흥미가 없었는데, 많은 때에 하나님은 나로 주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셨고, 내 마음속에 뜨거운 불이 타오르는 듯한 극한 즐거움도 느끼게 하셨고, 그분의 임재도 만지듯이 느끼게 하셨다. 이것이 영적 생명의 최고 절정이 아니란 말인가? 많은 때에 이러한 느낌을 잃었을 때 나는 생명의 메마름과 맛을 잃었으며 냉담함과 평범함을 느꼈었다. 이때마다 나는 이러한 느낌을 얻기 위해 진지한 마음으로 갈망하고 추구하며 기도했는데, 이것이 틀렸단 말인가?

이것이 많은 믿는 이들이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그들은 영에 속한 것과 혼(사람의 혼은 생각, 감정, 의지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음)에 속한 것을 구분할 줄 모른다. 그들은 아직 천연적인 생명의 가증함을 알게 하는 성령의 계시를 친히 얻지 못했다. 그들은 성령의 계시로 천연적이고 선량한 생명 안의 많은 가증한 부분을 볼 수 있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다. 또한 성실하고 겸손하게 성령께서 지적하신 것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합당한 때에 성령은 그의 천연적인 생명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그에게 지적하며 보여 주실 것이다. 성령은 그의 모든 일과 생활이 ‘자아’를 중심과 근원으로 삼았을 뿐 그분을 모든 것의 주인으로 삼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신다. 그의 모든 선이 자기를 좇아 행한 것이며, 그중 적지 않은 부분이 자기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게 하신다. 또한 그의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기꺼이 순종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른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행한 것도 아니고 자기 뜻대로 독단적으로 행한 것이며 모든 표면적인 기도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모두 거짓된 것임을 알게 하신다.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사용하지만, 그는 이러한 은사를 사용할 뿐 은사를 주신 주님의 뜻은 고려하지 않는다. 비록 그가 주님의 말씀을 열렬히 사모하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려고 하지 않고 성령의 계시로 알게 하심을 구하지 않으며, 헛되이 지식을 구하고 생각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 비록 그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감각으로 주님의 사랑과 친밀함을 느끼려 하나 이것은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다.이러한 사람은 주님을 사랑한다기보다는 그 느낌―그를 적셔주고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삼층천’의 영광을 느끼게 하는―을 더욱 사랑한다.

그의 모든 생활과 일은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다. 성령께서 이렇게 믿는 이로 자아 생명의 가증함을 계시로 알게 하신 후에 믿는 이는 전에 자신의 혼 생명을 붙잡았던 것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계시는 한 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것이다. 단 한 번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성령께서 처음에 빛으로 믿는 이를 비추실 때에 그는 빛 가운데서 통회하며 혼 생명을 기꺼이 죽음에 넘기기를 원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매우 악하기 때문에 얼마 후 혹은 며칠 후 믿는 이의 자부심과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기를 즐겁게 하려는 마음은 다시 되살아난다. 그러므로 믿는 이가 자기의 혼 생명을 버릴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계시는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몇 가지 일에서 자원하여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의 안목을

가진 사람은 몇이 안 된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믿는 이들에게 무수한 실패를 허락하고 적지 않은 수치를 겪게 하실 때 비로소 그들은 자기의 혼 생명을 버리고자 한다. 이러한 원함이 있다 하더라도 이 원함만으로는 불완전하다. 사람은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믿는 이는 마땅히 이러한 어리석음을 제해야 한다. 마땅히 하나님의 안목을 취하여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성령께서 혼 생명의 형편없는 부분을 일일이 드러내시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마땅히 믿음으로써 우리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믿고, 성경 안에서 성령께서 우리의 생명에 대해 계시로 보여 주시도록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그분이 우리를 혼 생명을 벗어 버리는 길로 인도하실 수 있다. (영에 속한 사람 3부, 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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