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흔적
갈라디아서
2014-08-18 , 조회 (159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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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내 몸에 예수님의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입니다.(갈 6:17)

Henceforth let  no one trouble me, for I bear in my body the brands of Jesus. (Gal. 6:17)

17절에 있는 흔적이라는 단어는 주인을 나타내기 위해 노예에게 새겨진 표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롬 1:1)에게 있어서 육체적인 흔적은 그의 주인을 신실하게 섬기다가 얻은 그의 상흔들이었다(고후 11:23-27). 영적으로 그 흔적들은 바울이 이 땅에서 주님으로 인해 산 생활의 특징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활은 끊임없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요 12:24),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요 6:38), 자기의 영광을 구치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요 7:18),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는(빌 2:8) 것이다. 바울은 주님의 생활의 특징인 흔적을 지니고 주 예수의 본을 따랐다. 이점에서 그는 유대인들과 절대적으로 달랐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노예로 여겼다. 노예가 어떤 주인에게 속했는가를 나타내는 표식을 지녔던 것과 같이 바울은 예수의 흔적을 몸에 지녔다.

이것은 바울이 주님께 속했다는 간증과 선포로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에게 계속 새겨진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섬기다가 상처를 많이 입었다. 고린도후서 11장 24절과 25절에서 그는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았고, 한 번 돌로 맞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의 몸에는 그가 그리스도를 섬겨온 여러 해를 말해주는 많은 상처가 있다. 이러한 상처 또한 예수의 흔적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예수의 흔적」이라는 표현의 영적 의미는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주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솔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러한 생활을 하셨다. 사복음서를 읽을 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계속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생활이 흔적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 그러한 흔적을 담당하셨다. 주님은 핍박받고, 조롱 당하고 멸시받고, 거절당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을 변호하는 말은 전혀 하지 않으셨다. 대신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함으로써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께 속했음을 보여 주는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 바울은 주님을 따라 이런 생활을 했다.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바울은 「고난에 참여함」을 언급한다. 예수의 고난에 참예하는 자로서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한 표시로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평강이라는 말로 문안할 때, 그로 하여금 이러한 평강을 유지하게 한 것은 예수의 흔적이었음을 상기했다. 그는 핍박받고 멸시받고 조소당하고 거절당했고 정죄받았기 때문에 참으로 예수의 흔적을 지닌 자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를 바울과 같은 정도로 생각할 수는 없지만, 우리도 조소받고 조롱 당하고 멸시받고 비판받고 정죄받고 있으므로 어느 정도는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에 관한 많은 악한 말이 있다. 우리가 계속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는 한, 이러한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신실하게 하고자 한다면 계속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갈라디아서 4장 29절에서 바울은 말했다.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그 영을 따라 난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회복역 참조). 이 말씀은 분명히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할 것임을 가리킨다. 주 예수와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핍박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긍휼과 은혜로 그분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러한 생활을 할 때 똑같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멸시받고 거절당하고 정죄받고 조소당하고 조롱당할 때 예수의 흔적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흔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평강을 누리고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 의해서도 괴로움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바울이 평강에 대해 쓸 때 그가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평강을 유지하고 있음을 속에서 깊이 인식했다고 믿는다. 원칙적으로 오늘날 우리의 체험도 동일하다. 우리를 비판하고 핍박하고 조소하는 사람들 속에 평강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반대와 조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에서 깊은 내적 평강을 누리고 있음을 간증하실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핍박은, 우리가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아니고 그 영을 따라 난 자라는 것을 표시한다.

다른 사람을 핍박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육체에 따른 자녀들이다.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감으로 인해 오는 핍박을 우리는 적극적으로 보아야 한다. 핍박을 받을 때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고 주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이삭을 조롱한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스마엘의 조롱을 받은 이삭이다. 우리는 사이비 종교라는 비난과 이단을 전파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에 대한 많은 거짓 고소가 문서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나는 평강 안에 있고 매일 밤잠을 잘 잔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다. 예수의 흔적을 지님은 우리로 평강의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 더욱이 이러한 반대와 핍박은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따르고 있음을 가리킨다. 체험을 점검해 보면, 당신은 주 예수를 따르면서 핍박을 더 받을수록 내적으로 그만큼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도행전 5장 40절과 41절에 따르면,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능욕받은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다. 핍박은 우리가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6장 16절에서 말한대로, 이 규례를 따라 행하는 자들에게는 틀림없이 평강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규례를 따라 행함을 어떻게 아는가? 우리가 핍박받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알게 된다. 이러한 규례를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핍박이 올 이유가 없다. 바울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았지만 핍박을 받았다. 핍박은 단순히 그리스도와 십자가로 인해 왔다. 바울이 받은 핍박은 그가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에 있고, 핍박받은 자인 주 예수와 하나라는 표시이다. 그러므로 그는 확신을 가질 수 있고 평강을 누릴 수 있었다. (갈 LS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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