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인가? 아니면 '다락방'인가?
왕국생활
2014-09-03 , 조회 (378) , 추천 (0)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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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날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부흥인가? 운동인가?
새로운 종류의 기독교활동인가?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다른 곳에서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기 위해 모였는가?
이것 때문에 여기에 왔을지 몰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주의 회복,
곧 다락방의 헌신을 산출하기 위해 있습니다.

주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
큰 군중이 그분을 따랐습니다.
무리들이 구원과 치료함을 얻고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120명 정도만 다락방에 있었습니다.

군중, 즉 무리는
주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움직임을 위해서
아무것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움직임은 다락방에 있는 자들,
곧 그 눈이 열리고
마음이 감동된 자들에게 있었습니다.
이 작은 숫자가 다락방 안에 들어와
불태워지고 온 세상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오늘날도 원칙은 똑 같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시대를 변화시키는 것은 소수입니다.

우리는 군중 속에 있으려는가?
아니면 다락방에 있으려는가?
당신은 군중의 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주님의 긍휼로 다락방 안에 들어올 것인가?
우리는 누구인가를 모릅니다.
오직 주님만이 다락방에 있을 자를 아십니다.

... 기꺼이 여기어 오려 하지 않는다면
여기에서 읽은 것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다락방에 있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방식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저는 당신의 간증의 회복을 위해
기꺼이 다락방에 있고자 합니다."
(하늘에 속한 이상. 헌신)

■우리들 가운데서 다락방의 헌신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좀 더 높은 진리를 아는 것으로,
조금의 평범하고 일반적인 헌신으로
만족할 수 없다고 주님께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또 다른 기독교의 실행을
반복하기 위해 있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체계가 그렇게 우릴 이끌어 간다면
우린 안주하지 않고 영적 불만족을 가지고
우리 생활에 북풍이 불기를
주님께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시대를 전환하셔야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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