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유를 포함한 영을 영접함
갈라디아서
2014-09-08 , 조회 (145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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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산 혼이 되었지만,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고전 15:45)

So al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became a life-giving Spirit. (1Cor 15:45)

더구나 주님은 그 영이십니다. 주님이신 그 영께서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고후 3:17)
And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2 Cor.3:17)

거듭남은 놀라운 실제이지만, 이 메시지에서 나의 부담은 거듭남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부담은 그 영에 있다. 하나님은 오직 그 영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수 있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사람들은 그를 창조주라고 말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또한 우리의 구속자요 구원자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을 그 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영은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이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은 단순하지 않다. 이 영은 신성과 인성과 인생과 십자가에 못 박힘과 부활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인생의 중요성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 이러한 것들에 대해 말한다.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태어나 나사렛 목수의 집에서 자란 분이 바로 사람의 모양을 입은 하나님 자신이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자 창조주인 분이 사람이 되어 목수의 집에 제한되어 심지어 목수로서 수년간 일했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예수는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곧 임마누엘이라 불리웠다. 이것은 예수가 이 땅에 산 동안 하나님이 이 땅에 살았음을 의미한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그분의 생활에 있어서 인내했고 감추어져 있었다. 그분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분은 수년 동안 나사렛에서 제한되었다. 그분은 사역을 하기 위해 나갔을 때에도 대규모로 하지 않고 소규모로, 심지어 느리게 하셨다. 사람들은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자매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묻는 예수에 대해 의아해 했다.

그들은 그를 단지 나사렛에서 난 예수로만 알았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 그를 하나님과는 다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이 구절은 태초에 계신 말씀이 하나님이었음을 말해 준다. 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육신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땅에서 일하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동산에서 잡히고 대제사장 앞과 빌라도와 헤롯 앞에서 재판 받아 사형을 선고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바로 육신 안에 있는 하나님이었다. 그렇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물을지 모른다. 그 대답은 하나님이 예수의 인성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이다. 찰스 웨슬레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그의 찬송가 중 한 곡에서 『놀라운 사람! 내 하나님이 내 대신 죽으셨네.』(영어 찬송 296장)라고 말했다. 같은 찬송가 2절은 『전체가 비밀일세 영원한 분이 죽으셨네!』로 시작된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분은 나사렛 예수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하나님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짖었다(마 27:46). 교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이것을 설명할 때 당혹해 할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님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을 입고 십자가에서 죽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신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칠 수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그는 장사지낸 바 되었다. 그후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는 마지막 아담인 그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서 바울은 계속해서 『지금 주는 그 영이시니』(헬라어 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오늘날 하나님은 성육신과 인성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요소를 포함한 그 영이다. 그리스도의 놀라운 죽음의 효능과 부활의 능력과 부활 생명의 실제는 모두 그 영 안에 있다. 이 영은 이제 단순한 하나님의 영이나 여호와의 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그 영은 성육신과 인성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구원받았을 때 그러한 영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의 죽은 영을 거듭나게 하고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했다. 우리가 거듭났을 때 우리 안으로 들어온 그 영은 삼일 하나님의 최종 완성, 즉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실현이요 표현이다. 이 영은 우리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우리 안으로 분배해 주었다.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서 그 영에 의해 거듭났을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 구원받은 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개선시키려고 하거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뭔가를 하려고 한다. 타고난 사람을 개선시키거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노력으로 인해

주님의 백성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경륜의 표적을 놓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경륜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경륜은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경륜에 의한 그분의 구원으로 인해 우리를 거룩한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여 우리로 그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들로 살게 하셨다. 하나님의 목적은 단지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개선하고 그로 인해 악 대신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선한 사람을 많이 갖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의 갈망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결케 되는 것만을 원치 않으신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살기를 원한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그 영으로 태어나 그 영을 받아들이도록 되었다. (갈 LS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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