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다스림과의 관계 (2)
생명의 체험
2014-09-22 , 조회 (124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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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위자들에게 복종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은 권위가 없으며, 이미 있는 권위자들은 다 하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롬 13:1)

Let every person be subject  to the authorities over him, for there is no authority except from God, and those which exist are ordained by God. (Rom. 13:1)

왜냐하면 그들의 양심이 그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데 충분하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상태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의 행위는 여전히 사람의 통치를 요한다.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자녀들은 부모들에게, 근로자는 감독들에게 통치를 받아야 한다. 흔히 그들은 다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관심할 뿐 속의 양심은 주의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이 여전히 사람의 통치를 받는 타락된 상태에 살고 있음을 크게 증명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양심이 철저히 처리될 때만 타락된 인간 통치의 상태에서 구출되어 양심의 통치를 받게 된다. 그럴 때 모든 일에 있어서 양심의 느낌을 따라 살며 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양심을 처리하는 최종 목적은 자기 통치로 복귀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다만 양심의 느낌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여전히 절반 정도 타락한 상태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을 처리하는 것은 단지 사람으로 인간 통치에서 자기 통치로, 사람의 시야에서 양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욱이 사람으로 자기 통치를 거쳐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데에 이르도록, 즉 양심을 거쳐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양심으로 되돌아가고자 하여 양심을 처리하는 것은 여전히 부정적인 목적이지만, 긍정적인 목적은 하나님 자신께로 회복되는 것이다. 따라서 양심을 처리하는 최종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의 통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자기 통치와 하나님의 통치는 크게 다르다.

자기 통치는 사람이 자기 양심의 느낌으로 살며 자기 양심을 처리함을 말하는 것인데 반하여, 하나님의 지배는 사람이 영의 직감으로 살며, 직감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 안에 사심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영 안에 있는 직감을 하나님의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직감으로 말미암아 살고 직감에 의해 통제받고 있을 때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며, 하나님에 의해 다스림 받고 있는 것이 된다. 양심은 옳고 그름의 느낌만 지니고 있을 따름이다. 양심은 그릇되고 악한 것은 모두 정죄하며, 옳고 선한 것은 모두 의롭다고 한다. 그러나 직감은 선악 시비를 능가한다.

직감은 그릇된 것 이상이고 옳은 것 이상이며, 악한 것 이상이고 또한 선한 것 이상이다. 직감은 그릇되고 악한 것을 모두 정죄하지만, 옳고 선한 것이라고 반드시 다 인정하지는 않는다. 직감은 오직 하나님께 속하고, 그 영에 속하며, 생명에 속한 것만을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양심은 거짓말을 정죄하고 진실된 것은 입증한다. 만일 우리가 양심으로 산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한 다 좋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직감으로 산다면, 하나님의 느낌을 따라 행하므로 거짓말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또한 진실이라고 언제나 말할 수도 없다. 우리는 이러한 말들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아니면 내 자신에게 속한 것인지를 질문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짓말하는 것도 진실을 말하는 것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께 속하고, 그 영에 속하고, 생명에 속한 말만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형제가 말씀을 전할 경우,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양심에 의해 점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하며, 무슨 주제를 선택해야 하며, 또는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사 그로 하여금 말하게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들은 선악 시비의 한계 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양심의 느낌으로는 이런 면에서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오직 직감을 통해서만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을 만질 수 있고, 하나님께 인도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

양심과 직감의 이러한 차이점들은 또한 자기 통치와 하나님의 통치 사이의 차이점들인 것이다. 오늘날 완전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살고 있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세 가지 통치 형태의 결합 상태로 살고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이 인간의 통치를 받고 있는데, 그들은 여전히 사람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그들 중 또 한 부분은 자기 통치인 양심의 통치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극히 일부만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직접 하나님의 통제를 받고 있을 따름이다. 이것은 매우 비정상적인 상태이다. 그러므로 더 철저히 양심을 처리하여 부정적으로는 인간 통치에서 구출되고, 긍정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 직접적인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 (생명의 체험, 제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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