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혼의 '자아'
영에 속한 사람
2014-09-24 , 조회 (127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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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십시요.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 혼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혼 생명을 잃을 것이고,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혼 생명을 잃으면  혼 생명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그 대가로 자기 혼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혼 생명과 바꾸겠습니까?" ( 마 16: 24- 26).
 
Then Jesus said to His disciples, If anyone wants to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For whoever wants to save his soul-life sha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soul-life for My sake shall find it. For what shall a man be profited if he gains the whole world, but forfeits his soul-life? Or what shall a man give in exchange for his soul-life?(Matt. 16:24-26)   

마태복음 16장 24절부터 26절에서도 주 예수님은 혼 생명과 십자가의 관계를 언급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이 몇 구절 말씀에서 우리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혼 생명을 사지에 넘김으로써 그들의 혼 생명을 잃어버리도록 부르고 계신다. 여기서 말씀한 것은 앞에서 마태복음 10장에서 말씀한 것과 같지 않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주의하는 혼 생명의 부분은 사랑이고 여기 16장에서 주의하는 혼 생명의 부분은 사람의 ‘자아’이다. 만일 우리가 앞의 구절을 읽어 보면 그때에 주 예수님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그분이 십자가에

올라가 받으셔야 할 고통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웠기 때문에 주님에게, “주여, 당신을 불쌍히 여기소서!”(원문 참조)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의 뜻을 생각했고 자기의 선생이 육신에 십자가의 고통받는 것을 보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줄 몰랐고, 십자가의 죽음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함을 몰랐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아를 사랑하는 마음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의 의사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올라가 죽으시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되고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게 되겠지만 당신 자신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므로 당신이 받게 될 고통을 생각지 않으십니까? 주여, 당신 자신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나 주님은 자기를 불쌍히 여기는 이러한 의사(意思)가 사탄으로부터 왔다고 답변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내가 십자가에 가야 할 뿐 아니라 나를 좇는 너희들도 내 제자가 되려면 필히 십자가에 올라가야 한다. 나의 길이 어떠하면 너희의 길도 그러하다. 너희는 유독 나만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고 착각하지 말라. 나의 제자 된 너희들도 나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 내가 자신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의 위치에서도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같이 너희도 너희의 혼 생명을 아끼지 말고 버림으로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하시는 것을 행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주님께 “어찌하여 당신은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했지만, 주님은 “너의 자아를 버려야 한다.”고 답변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에는 대가가 요구된다. 이러한 요구에 대해 육체는 떨지 않을 수 없다. 혼 생명이 우리 속 깊은 데에서 다스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제 일로 삼을 수 없게 된다. 이는 혼 생명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지 않고 자아의 뜻을 따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에 올라가고 자아를 부인하며 희생하고 그분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으며 우리의 혼 생명을 잃어버리라고 부르실 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자기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게 된다. 혼 생명은 항상 우리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의 좁은 길을 택하려고 할 때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려고 할 적마다 혼 생명은 손상을 입게 된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혼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오직 이것으로만이 그리스도의 영적인 생명으로 우리 안에서 온전하고 순전하게 주가 되시게 할 수 있고 또한 우리를 통하여 세상 사람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만일 우리가 앞의 문장의 어떠함을 주의해 본다면 이 혼 생명의 일이 얼마나 악한가를 더욱 깨닫게 될 것이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한 때는 그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비밀을 이해한 후로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베드로에게 그들이 따르고 있던 비천한 예수가 바로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신 때이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계시를 얻었지만 즉시 그는 혼 생명의 지배를 받아 자기 선생에게 그분 자신을 불쌍히 여기라고 권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영적인 계시와 놀라운 지식이 우리가 혼의 지배를 받지 않도록 보장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도리어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체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의 혼 생명은 아마 다른 사람보다 더욱 감추어져서 제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혼 생명이 십자가의 처리를 받지 않은 이에게 있어서 사람의 혼 생명은 시종 사람 속에 보존되어 있고 상실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혼 생명이 얼마나 쓸데없는 존재인가를 본다. 이번에 베드로의 혼 생명이 발동한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 예수님을 위해서였다. 그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불쌍히 여기며 주님께서 기쁘시기를 원했기 때문에 고난이 주님에게 임하지 않기를 원했다. 그의 마음가짐은 좋았고 동기도 좋았다. 그러나 이것은 혼 생명에서 나온 ‘인정’이다.

주님은 혼에서 비롯된 모든 고려와 생각을 거절하셨다. 혼 생명으로 주님을 사모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을 섬기고 사모하며 주님에게 동정을 표하는 데 있어서도 혼에 속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혼 생명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동정하는 일에서도 열납될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주 예수님 자신이 혼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그분은 사람들이 혼으로 그분을 섬기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혼 생명을 사지에 넘기도록 부르신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혼 생명의 방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또한 주님을 사랑하는 방면의 혼 생명을 가리킨다. 주님은 일을 어떻게 했는가를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물으신다. (영에 속한 사람 3부, 제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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