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혼의 세상에 대한 사랑
영에 속한 사람
2014-09-24 , 조회 (127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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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의 아내를 생각해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혼 생명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혼 생명을 잃을 것이고, 혼 생명을 잃는 사람은 혼 생명을 보존할 것입니다.(눅 17:32-33)

Remember Lot's wife. Who ever seeks to preserve his soul-life will lose it , and whoever loses it will  preserve it alive. (Luke.17:32-33)

누가복음 17장 32절과 33절에서 주님은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거기서 가리키는 것은 세상적인 사물이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여기서도 주님은 혼 생명을 잃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특별히 믿는 이들이 버리기 어려운 재물에 대한 마음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하신다. 이는 그녀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자기 재물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소돔을 향해 가지 않았다. 그녀는 한 치도 뒤로 후퇴하지 않았다. 그녀가 행한 것은 딱 한 번 고개를 뒤로 돌린 것뿐이다. 그러나 이 고개를 돌린 이것이 우리에게 계시해 준 것은 얼마나 많은지!

이 돌이킴은 그녀의 마음의 기나긴 이야기를 말해 준다. 믿는 이는 세상을 멀리하고 표면적으로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그의 안에서는 주님을 위해 잃었던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혼 생명의 일이다. 주님께 헌신한 믿는 이에게 있어서는 다시 세상 길에 들어서기 위해 물러나거나 주님을 위해 버렸던 것을 다시 얻기 위해 힘쓸 필요도 없이 마음속에 아까워하는 것이 있는 그 자체가 십자가 안에서의 세상의 위치를 아직 보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혼 생명은 믿는 이가 세상에 돌아가서 그 길로 행하게 하지 않고서도, 다만 그가 버려야 할 것이나 이미 버린 것을 아까워하는 사욕을 품게 함으로써 그 사람 속에서 일할 수 있다. 

혼 생명이 참으로 잃어버린 바 된 위치에 놓일 때 세상의 어떤 사물도 믿는 이의 마음을 요동케 할 수 없다. 혼 생명은 본래 세상에 속했기 때문에 혼 생명은 세상적인 사물을 버리기를 꺼려한다. 오직 믿는 이들이 진심으로 혼 생명을 죽음에 넘기기를 원할 때 그는 마음에 요동함 없이 산상에서의 주 예수님의 가르침을 준행할 수 있다. 비록 우리가 산상수훈에서 주 예수님이 십자가의 기능을 언급하신 것을 볼 수 없지만, 믿는 이가 진정 주님과 함께 죽은 체험―죄에 대하여 죽었을 뿐 아니라 ‘이미 죽은’ 근거를 가지고 혼 생명을 거절함―을 가지고 있다면 주저함이 없이 산상수훈을 따를 것이다. 믿는 이의 혼 생명 안에 십자가의 깊은 운행이 없다면, 비록 외적으로는 산상수훈을 좇아 행할 수

있을지라도 그는 안팎이 일치되지 않는다. 혼 생명을 잃은 믿는 이라면 자연스럽게 아무 가식 없이 속옷을 달라 할 때에 겉옷까지도 사람에게 넘겨 줄 수 있다. 죽음 안에서 혼을 잃은 믿는 이가 바로 세상 사물과 끊어진 믿는 이이다. 영에 속한 생명을 얻는 조건은 바로 무언가를 잃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얼마만큼 얻어야 부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부할수록 무언가를 더 많이 잃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얻은 것’으로 측정할 것이 아니라 ‘잃은 것’으로 측정해야 한다. 우리의 참된 분량은 남은 것이 얼마인가에 있지 않고 부어진 술이 얼마인가에 달렸다. 왜냐하면 가장 많이 잃어버린 자가 가장 많은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능력은 사랑의 희생에서 보이는 것이다. 만일 우리 마음이 아직 세상 재물을 사랑하는 것에서 격리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혼 생명은 아직 십자가 안에 있지 않은 것이고 우리가 아직 십자가의 운행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34절은 일반적인 믿는 이들을 말하는데 그들이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하였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기꺼이 견디었을 뿐 아니라 기쁘게 견디었다. 이것이 십자가의 일의 결과이다. 성도들의 소유물에 대한 태도는 곧 그들이 혼 생명을 보존하였는가 아니면 이미 죽음에 넘겼는가를 나타낸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순수하게 영적인 생활을 갖고자 한다면 우리 마음이 세상의 모든 것과 단절되고 더 이상 롯의 처의 마음을 품지 않도록

하나님으로 일하시게 해야 한다. 이렇게 세상 재물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영적인 생명을 얻는 조건 중에 하나이다. 이는 오직 성령께서 하늘의 진실함과 영에 속한 생명을 성도에게 온전히 계시할 때만이 그가 세상의 모든 것을 경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비교가 될 수 없다. 빌립보서 3장에서의 바울의 체험은 이러한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모든 것을 해로 여겼다’가 나중에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잃었다’. 뒤에 그는 이렇게 행한 결과로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많은 때 우리의 혼 생명이 얼마나 능력 있는지를 모른다. 우리가 물질적인 시험을 받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혼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게 된다. 많은 때에 우리에게 생명을 잃는 것보다 재물을 잃는 것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 필요한 것 같다! 세상 물건은 진정 혼 생명의 존재 여부를 증명하는 시금석이다. 하나님의 자녀 가운데서 그들의 음식과 생활을 지나치게 주의하는 사람에게는 십자가의 더 깊은 운행이 필요하다. 그 목적은 모든 세상적인 것에서 벗어남으로써 그들의 영이 아무 장애 없이 하나님 안에서 살며, 그들의 영이 혼에 의해 포위되지 않고 영향받지 않게 하는 것이다. 무릇 사람이 세상 일을 염려하는 것은 그가 혼 생명을 잃어버린 적이 없고 십자가의 운행을 거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영에 속한 사람 3부, 제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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