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선물과 두 가지 비극
갈라디아서
2014-09-25 , 조회 (175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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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 영이십니다, 육체는 무익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요 6:63) 
It is the Spirit who gives life; the flesh profits nothing; the words which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are life.(John 6:63)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우리 안에 역사하는 두 가지 선물, 즉 그 영과 말씀을 주셨다. 이 선물들은 사실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은 그 영이자 또한 말씀이다. 요한복음은 하나님과 그 영과 말씀을 분명히 계시하는 책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의하면 하나님 자신인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결국 성육신된 이 말씀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마지막 아담인 생명 주는 영이 되었다(고전 15:45下). 요한복음도 말씀과 그 영을 연결한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주 예수님은, 『생명을 주는(살리는) 것은 영이니 …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생명이요 그 영이 생명이요, 말씀이 생명이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이 셋은 하나다. 하나님은 말씀이요, 말씀은 그 영이요, 그 영은 하나님이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수세기에 걸쳐 두 가지 큰 비극이 일어났음을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말씀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영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성경이 하나님 자신을 그의 택한 백성 안에 생명으로 분배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 교사들이 성경에 대한 이러한 합당한 사용을 게을리하고 성경을 단지 지식의 책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성경을 거룩한 분배를 위한 생명의 책으로 여기지 않았다. 성경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와 해석들이 논쟁과 토론을 가져왔다. 이러한 토론들 중 많은 것이 그리스도론(Christology),

즉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신학적 연구로 빠져버렸다.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그들의 논쟁에서, 위대한 교사들 중 어떤 교부들을 포함한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산 인격을 소홀히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 자신보다 그리스도론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하나님의 목적은 성경이 생명나무여야 한다는 것이나, 성경을 사용함에 있어 어떤 교사들은 성경을 지식의 나무로 바꾸었다. 그들은 먼저 그들 자신을 사망으로 이끌어 갔고, 그 다음에 사망을 교회 안에 퍼뜨렸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성경의 많은 문제들에 관한 논쟁이 여전하다. 침례를 예로 들어보자. 침례에 관해 견해를 달리함으로써 생긴 많은 분열의 종류는 이루 다 셀 수 없다. 사용하는 물의 종류에 관해서, 사람들이 물에 잠기는 방법에 관해서,

사람들이 침례받는 이름에 관해서 논쟁이 있었다.말씀이 분열의 요인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비극인가! 말씀이 그리스도인을 수천 그룹으로 나누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성경 그 자체는 이러한 것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 책임은 지식을 주의하고 산 인격을 소홀히 한 사람들에게 남는다. 교회 역사에 일어난 두 번째 비극은 그 영과 관련되어 있다. 성경과 그 해석에 있어서는 분열이 있었던 반면에 그 영에 관해서는 혼돈이 있었다. 이 혼돈으로 말미암아, 많은 근본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그 영에 관해 듣기도 싫어한다. 실지로 어떤 사람들은 그 영을 말하는 것을 너무 신비스러운 것으로 여겨 그 영에 관한 말이라면 무조건 두려워한다. 그 영에 대한 이러한 소홀함은 얼마나 큰 비극인가! (갈 LS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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