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을 받아들임
갈라디아서
2014-09-26 , 조회 (154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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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다시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노예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들의 자격의 영을 받았습니다. 이 영 안에서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외칩니다. (롬 8:15)
For you have not received a spirit of slavery bringing you into fear again, but you have received a spirit of sonship in which we cry, Abba, Father! (Rom. 8:15)

앞 메시지에서 그 영으로 나는 문제는 분명해졌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어떻게 그 영을 받아들이는지에 관해 분명하다는 확신이 없다. 받아들인다는 말은 신약의 많은 곳에서 사용된다(요 7:39, 20:22, 롬 8:15, 엡 6:17).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그 영을 받아들이는 것에 관해 분명히 말한다(3:2, 14). 우리가 받아들이고 또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그 영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에 반대하며 그 영은 신격의 세 번째인 성령만을 가리킬 뿐 삼일 하나님은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신약, 특히 바울의 서신들에 의하면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그 영은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이다. 어떤 사람들은 「과정을 거친」이라는 말을 비난하며,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지만 과정을 거치셨다. 성육신은 과정이 아니었는가?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의 성육신 전까지 하나님은 육신의 몸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말구유에서 태어난 그분은 아기로 성육신 된 전능한 하나님이었다. 이사야 9장 6절에 따르면 우리에게 태어난 그 아기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불리운다. 우리가 앞 메시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성육신된 이 아이는 수년 동안 목수의 가정에서 살았다. 우주의 창조주가 나사렛의 한 목수의 가정에서 살았음을 상상해 보라. 그것은 과정이 아니었는가?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못 박힘과 부활은 과정이 아니었는가? 하나님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인생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과정을 거치셨다. 오늘 우리 하나님은 「처음 그대로의」

하나님이 아니라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이다. 오늘날 그는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이다. 교리적인 관념들에 대해 토론하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삼일 하나님의 산 인격을 소홀히 한다. 얼마나 가련한가? 우리가 받아들였고, 또 여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 영은 바로 우리를 위해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이다. 그 영은 만유를 포함한 복합적인 영이다. 이 영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삼일 하나님-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을 받아들인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체현 되었고, 아들은 그 영으로 실제화된다. 우리는 우리가 그 영을 받을 때 성령만 받고 아버지와 아들은 멀리 하늘에 머물러 계신다고 생각하는 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영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삼일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사용된 어떤 전치사는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올 뿐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옴을 나타낸다(요 6:46, 7:29, 16:27). 아들이 왔을 때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아버지와 함께 왔다. 이것이 주 예수께서 자신이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자신과 함께 계신다고 말한 이유이다(요 16:32).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왔을 때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온 것처럼, 그 영도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오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은 하나이기 때문에 분리할 수 없다. 그 영은 아들의 실제화이며 아들은 아버지의 체현이다. 삼일 하나님의 어느 하나를 갖더라도 그것은 셋 모두를 갖는 것이다. 그들은 분리될 수 없다. 주님을 찬양하자! 우리는 그 영을 받아들일 때 아버지와 아들도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다. (갈 LS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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