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무 사이의 중립인 사람
하나님의 경륜
2014-10-08 , 조회 (165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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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가지들입니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떠나서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 15:5)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He who abides in Me and I in him, he bears much fruit; for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John 15:5)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즉 하나님의 경륜은 성경 66권 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계시되고 있다. 성경의 첫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을 모든 창조물의 중심으로 창조하셨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경륜 안에서 사람이 온 우주의 중심이신 하나님 자신을 표현할 것을 의도하셨다. 하나님의 말씀 첫 부분에서 우리는 두 나무, 즉 생명나무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를 본다(창 2장). 성경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려면 이 두 나무와 또 그 나무들이 무엇을 대표하는지에 대해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후 그를 이 두 나무 앞에 두셨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든 생활과 행함은 두 나무 중 어느 나무를 먹는가의 문제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 두 나무에 참여하는 문제에 주의하라고 지시하셨다.

만일 사람이 올바른 방법으로 그 나무들을 대한다면 그는 생명을 소유하게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망이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생명이냐 사망이냐의 문제였다. 사람이 창조된 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사람이 이 두 나무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달려 있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분명히 이렇게 가르치셨다. 즉 사람이 둘째 나무인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 참여하면 그는 죽을 것이요, 첫째 나무인 생명나무에 참여하면 그는 생명을 갖게 될 것이다. 이 두 나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 전체의 계시에 의하면 생명나무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을 의미한다. 생명나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상징한다. 신·구약 성경은 여러 차례 주 예수님을 ‘나무’로 나타내거나 또는 나무의 ‘가지’로 나타내고 있다.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와 스가랴서에서도 주님은 ‘가지’라는 특별한 칭호를 갖고 계신다. 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분깃이시요 누림이시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많은 나무들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주 예수님은 아가서 2장에서 사과나무에 비유되신다.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3절). 우리는 그분의 그늘 아래, 즉 그늘이신 그리스도 아래 앉아 그분의 모든 풍성인 그 나무의 열매를 누릴 수 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는 그리스도를 나무로 상징한 또 하나의 예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5절). 둘째 나무인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나무는 다름 아닌 사망의 근원인 사탄을 묘사한다. 둘째 나무는 사망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그 나무는 바로 사망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첫째 나무는 생명의 근원이요, 둘째 나무는 사망의 근원이다. 온 우주 가운데 하나님 자신만이 생명의 근원이시요, 사탄만이 사망의 근원이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라고 말하는 시편 36편 9절은 하나님 자신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시라는 것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사탄이 사망의 근원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구절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라고 말하는 히브리서 2장 14절이다. 사망의 세력은 사탄의 손에 있다. 그러므로 시간이 시작될 때부터 있던 이 두 나무는 두 근원을 묘사한다. 하나는 생명의 근원이며, 다른 하나는 사망의 근원이다. 시작부터 세 편(便), 즉 하나님과 사람과 사탄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순수한 사람은 생명과 사망의 중간에 처해 있었다. 사람은 생명이나 사망 중 어느 하나를 취할 수 있는 중간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명의 입장에 서 계셨고 사탄은 사망의 입장에 서 있었다. 사람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중립적인 위치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의도는 이 중립적인 순수한 사람이 하나님 자신을 받아들여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이 하나로 연합되는 것이었다. 그럴 때 사람은 그의 생명이신 하나님을 담고 모든 것 되신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우주의 중심으로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을 충만히 표현하는 목적을 성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둘째 나무, 곧 사망의 근원을 취할 또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둘째 나무와 하나가 된다.

오, 우리 눈이 열려, 온 우주 가운데의 문제는 우리가 윤리를 실천하고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느냐, 사망인 사탄을 받아들이느냐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기 바란다. 우리는 윤리나 도덕적 수준의 이해 범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선행이나 악행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가, 사망인 사탄을 받아들이는가의 문제이다. 이 세 편을 분명히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한편에는 생명나무로 묘사되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서 계시고 다른 한편에는 지식의 나무로 묘사되는 사망의 근원인 사탄이 서 있으며, 아담은 받아들일 수 있는 두 손을 가지고 중립적인 위치에 서 있다. 그는 이제 이 편에 계신 하나님을 택할 수도 있고 다른 편에 있는 사탄을 택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경륜, 제 12장) (하나님의 경륜, 제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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