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허물과 정죄
생명의 체험
2014-10-10 , 조회 (111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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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한 양심에서 떠났고,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씻어졌으니, 진실한 마음으로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지고 지성소로 나아갑시다.(히 10:22)

Let us come forward to the Holy of Holies  with a true heart in full assurance of faith, having our hearts sprinkled from an evil conscience and having our bodies washed with pure water.(Heb.10:22)

양심의 느낌에 대한 세 가지 범주는 우리의 허물-우리의 의도, 동기, 말, 행동에서 하나님을 거스르고 사람에게 죄를 범함-에 대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느낌을 송사의 느낌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사람의 양심이 더 예민할수록, 또한 하나님 앞에서 더 생활할수록 그는 송사의 느낌을 갖기가 더 쉽다. 그가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죄를 범할 때마다 그 양심에는 즉시 송사하는 느낌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송사의 느낌의 강약에 따라 사람의 양심의 예민한 정도와 하나님께 빛을 받은 정도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송사 그 자체의 느낌에 관해서만 말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영적 상태에 심각한 손상을 준다.

사람의 양심이 이러한 송사의 느낌을 지니게 될 경우, 하나님과의 교통이 방해를 받으며, 이로써 그의 모든 영적 상태는 저하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자기 양심에 송사하는 느낌을 가지게 될 때마다, 즉시 주님 앞에 나아가 이러한 느낌에 따라 자기 죄를 자백하고 주님의 보배로운 피의 씻음을 구해야 한다. 때로는 사람 앞에 나아가 그 문제를 처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할 때 송사의 느낌이 사라지고, 양심에는 송사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양심을 처리하는 것은 한 면으로 우리 양심을 느낌에 있어서 예민하고 선명하게 하는 것이요, 또 한 면으로 우리 양심을 평안하게 하고 송사함이 없이 안전하게 하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양심을 처리한 결과는 한 면으로 우리가 더 비췸을 얻게 되도록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이며, 또 한 면으로 그러한 빛을 받아 우리로 하나님을 벗어나고, 하나님과 일치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받으심직하지 않은 모든 것을 제함으로 더 깊은 씻음을 체험케 한다. 이제 양심의 정죄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정죄는 양심 안에 송사하는 느낌에서 나온다. 우리가 그릇 행하였다고 느낄 때 우리 양심은 정죄한다. 그러므로 이 둘은 사실상 하나이다. 이 둘은 구별하기가 어렵다. 어떤 이는 양심의 정죄를 양심의 고소로 정의하고 있다. 이것 또한 한 가지 사항의 두 방면이다. 예를 들어, 법정에서 재판관은 정죄하는 반면 검사는 고소한다.

 이와 같이 우리 양심에서 우리가 그릇되었다고 느낄 경우, 이것은 한 면으로 우리를 고소하는 사람을 나타내며 또 한 면으로 우리를 정죄하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양심 안에 송사하는 느낌은 우리 영으로 영적인 일에 있어서 심히 억눌림당하고 무력하게 하는데, 이는 송사하는 느낌이 양심의 고소와 정죄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양심의 고소와 정죄에서 구출되려면, 송사하는 느낌을 조심스럽게 처리하는 길 이외에는 달리 취할 방도가 없다. 우리의 양심에서 송사하는 느낌이 사라진다면, 양심의 고소와 정죄도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생명의 체험, 제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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