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예민함과 약함과 사탄의 고소와 공격 (1)
생명의 체험
2014-10-10 , 조회 (90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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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영원하신 영을 통하여 흠이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의 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도록 우리의 양심을 얼마나 정결하게 하겠습니까? (히 9:14)

How much more will the blood of  Christ , who through the eternal Spirit offered Himself without blemish to God, purify our conscience from dead works to serve the living God? (Heb. 9:14)

양심의 예민함은 신중하고 철저한 처리에서 생긴다. 만일 양심을 처리함이 없다면 양심의 느낌은 틀림없이 더디며 둔할 것이다. 양심이 철저한 처리를 통과할 때, 양심의 느낌은 예민하게 되어 민감한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양심의 예민함은 좋은 현상이다. 이러한 사실은 양심이 이미 아주 철저히 처리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만일 우리 양심이 예민하게 되는 정도에까지 처리받지 못하였다면, 그러한 처리는 그리 철저하지 못한 것이다. 어떤 이가 죄의식을 느낄 때마다 양심을 너무 철저히 처리함으로써 그들의 발언이나 행동이 다소 힘 없이 보인다. 그들은 잘못을 저지를 때뿐 아니라, 심지어 그들이 어떤 잘못을 하게 될지 모른다고 할 만큼 예민하다.

게다가 그런 사람의 양심의 예민한 정도는 그들이 행동하고 발언하는 모든 일에 잘못을 느끼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 그들은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아도 역시 잘못을 느낀다. 이 지점에 올 때 그들 전체는 완전히 혼돈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그처럼 예민한 단계를 지나서 양심의 민감함에 이르게 되어야 양심을 썩 잘 처리하는 교훈을 배운 것이다. 이럴 때 그 사람의 양심의 느낌은 계속 예민하고 정상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의 예민함은 필요한 현상이다. 그러나 사람의 양심이 예민해지는 데까지 처리를 받을 때 그것이 지나치게 민감한 상태로까지 발전되어, 이로 인하여 양심이 약하게 될 수도 있다. 지나치게 민감함으로 인한 이러한 연약함은 양심을 지나치게 처리한 결과이다.

새로 구원을 받았거나 추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연약한 양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진지하게 주님을 추구하며 자신의 양심을 철저하게 처리하는 자들로서 아직 미숙하고 생명이 약한 자들만이 이러한 연약함을 갖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이 주님께 얻어질 때, 양심을 철저히 처리하며 모든 어두움에 속한 것과 그릇된 행위를 일소하게 된다. 그들의 양심은 유리와 같이 맑고 투명하다. 이럴 때 그들의 양심은 철저히 처리를 받아 더 이상 처리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어리고, 영적인 사실에 대한 체험이 없기 때문에 그들도 종종 너무 많이 처리하여 지나치게 민감한 양심을 갖게 되고 연약한 양심에 이르게 된다. 우리 몸의 피부와 같이, 어떤 부위는 느낌이 무감각하고 둔한데 어떤 부위는 느낌이 약하며 민감하다.

상처 부위에 새로 생긴 피부는 약하며 극히 민감하기 때문에, 약간만 건드려도 상하기가 쉽다. 이 부위를 연약한 피부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양심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될 정도로 너무 처리하면, 모든 일에 송사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많은 문제에서, 심지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정죄하시지 않는데도 그 사람은 자신을 정죄하며,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인정하시지 않기도 전에 그 사람은 자신의 평강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정죄와 불안은 심지어 그 사람이 문제를 처리한 다음에도 계속 남아 많은 불필요한 고통과 고뇌를 자아내게 한다. 이러한 약한 양심의 상태는 양심이 지나치게 민감한 결과이다. 양심의 여러 가지 약한 상태를 묘사하고 설명해 보겠다.

한 가지 상태는 우리가 송사하는 느낌을 따라 양심을 처리한 다음에도 양심이 여전히 정죄받고 고소받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일 당신이 어느 형제에게 죄를 범했다면 하나님과 교통할 때 빛을 받아 그것을 의식하게 되고, 따라서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와 그 형제에게 자백한다. 당신이 이렇게 했을 때, 당신의 양심이 강하고 정상적이라면 평강을 가지고 그 문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그 문제가 여전히 당신 안에 남아 계속 불안과 정죄를 느낀다면 양심이 약하다는 표시이다. 또 한 가지 상태는 처리할 필요가 없는 어떤 죄에 관계된 것인데, 당신의 양심은 그것도 처리하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속으로 한 형제를 싫어했는데 이것이 그릇된 것이라고 느낄 때 당신이 할 일은 주님 앞에 고백하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단지 주님 앞에서 개인적인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말과 행동으로 표현함으로써 상대방을 관련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만일 당신이 이러한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자백한 다음에도 여전히 그 형제에게 가서 자백하고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괴로움을 당한다면, 이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 형제에게 자백한 후에도, 당신 속에서 여전히 불안하고 또다시 그에게 자백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면, 이는 당신이 어떤 문제는 너무 많이 언급했고 또 다른 문제는 너무 적게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신은 다시 그에게 나아가면 그가 당신을 싫어할까 봐 두려워하여 갈피를 못 잡고 모든 평강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것은 한층 더 약한 양심의 상태다. (생명의 체험, 제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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