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현재의 회복 (1)
그리스도냐 종교냐
2014-10-26 , 조회 (121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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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찾지만, 신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나가 밤 낮 삼 일 동안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 삼 일 동안을 땅의 중심부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 12:39-40)  
 
But He answered and said to them, An evil and adulterous generation seeks after a sign, and a sign shall not be given to it except the sign of Jonah the prophet. For just as Jonah was in the belly of the great fish three days and three nights, so will the Son of Man be in the heart of the earth three days and three nights.(Matt. 12:39-40)

나는 로스앤젤레스 교회 안에 나타난 주님의 은혜로 인해 정말로 기쁘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집회에 와서 얼마간 머문 후에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이상합니다. 여러분의 집회는 방언을 하지 않지만 방언을 하는 사람들의 집회보다 더 살아 있습니다.” 그들은 방언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 있는 집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결코 믿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이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휴스턴 교회에서도 똑같은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들은, “방언을 하는 우리조차도 그러한 집회를 갖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주 예수님은 결코 어떤 형식이나 방법이나 전통을 주의하시지 않는다. 주 예수님은 오직 그분 자신만을 주의하신다.  이제 교리나 은사의 시대는 끝났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교리나 은사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회복이 마르틴 루터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때에 주님의 회복의 유일한 항목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문제였다. 이제 내가 믿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모두 이에 관해 분명하다는 것이다.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회복의 시대는 끝났다.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마르틴 루터에 뒤이어 믿음으로 거룩하게 되는 문제가 또한 회복되었다. 여러분이 주님의 회복의 역사를 읽어보면, 어느 한 시대에 요한 웨슬리(John Wesley)를 포함한 주님의 많은 종들이 거룩함의 문제에 모든 주의를 기울였음을 깨달을 것이다. 성화와 거룩함의 문제가 완전히 회복되었다. 얼마 후에 속 생명의 문제가 또한 회복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주님의 회복의 여러 단계요, 여러 시대이다. 주님의 회복의 첫 번째 단계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었다.

이 이후에 매 시대마다 한 항목 한 항목씩 뒤따라 회복되었다. 오순절의 체험이 회복된 것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였다. 그 근원을 추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1903년과 1904년에 웨일스 부흥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보다 더 앞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어떤 경우를 통해서든 주님은 소위 오순절 운동을 통하여 분명한 회복을 이루셨다. 어떤 사람들은 ‘오순절’이라는 용어를 좋은 의미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인 용어요, 좋은 용어이다. 그것은 주님의 회복에 속한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그 회복에는 참된 기적의 나타남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의롭게 됨의 시대가 끝난 것처럼 오순절 운동의 회복의 시대 또한 끝났음을 모두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순절의 체험이나 그에 관련된 것이 우리에게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주님은 더 전진된 회복, 그리스도의 회복, 그 영과 교회 생활의 회복을 완성하기 위해 전진하신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이러한 회복의 시대이다. 우리는 이전의 모든 항목들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이전의 모든 것들을 물려받았다. 교회 생활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과 믿음으로 거룩게 됨과, 오순절 체험을 포함한 주님의 회복의 다른 항목들이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즉, 우리가 이러한 것 중 어느 하나를 강조한다면 틀린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문제만을 주장하고 강조한다면, 우리는 4백 년 내지 5백 년 정도 뒤떨어진 것이다. 또 오순절 운동에만 몰두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7, 80년 정도가 뒤떨어진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이나 주님의 이전 회복의 다른 어떤 항목들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라.

 우리는 참된 방언이나 오순절 성령 강림의 은사를 반대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리는 다만 교회, 만유를 포함한 교회를 위할 뿐, 교파나 특별한 항목에 기초를 둔 분파를 위하지 않는다. 루터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교리에 기초를 두었고, 성결교는 거룩함의 교리에 기초를 두었다. 소위 오순절 교회는 성령 강림의 체험에 기초를 두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것 중의 어느 것에도 기초를 두지 않았다. 교회는 만유를 포함하며 유일한, 모든 믿는 이들의 합일에 기초를 둔다. 오늘날 주님의 회복의 시대는 생명이신 그리스도,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와 교회 생활의 시대이다. 우리는 우리의 체험을 통해 우리 영 안에 계신 생명이신 그리스도 외에는 지방 교회들을 견고하고 살아 있게 건축할 다른 길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냐 종교냐, 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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