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느낌과 영적인 지식
생명의 체험
2014-11-03 , 조회 (156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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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나 자신도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하여 항상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간직하려고 훈련하고 있습니다.(행 24:16)

Because of this I also exercise myself  to always have a conscience without  offense toward God and men. (Acts. 24:16)

양심의 느낌에 대한 또 하나의 강한 근거는 영적인 지식이다. 영적인 지식은 성경 진리나 영적인 것들에 대한 정신적인 지식과 이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과 거룩한 계시와 빛비춤을 통하여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식은 생명과 성령에 속한 것이다. 어떤 지식이 생명과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영적인 지식이 아니다. 참된 영적인 지식은 생명과 성령에서 온 것이다. 그러한 것은 생명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우리의 영적인 지식은 생명의 정도에 따라 얻어진다. 어떤 종류의 지식이 생명의 성장을 능가한 것이라면, 조숙하고 지적인 것에 불과하며 참된 영적인 지식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공급을 줄 수 없고 유익도 없다. 

그러나 만일 생명의 성장이 어느 정도 증가할 때 어떤 지식을 갖게 된다면, 이것은 바람직하고 정상적인 영적 지식이다. 이러한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으며, 우리에게 유익하다. 왜 영적인 지식이 생명의 성장에 비례하는가? 이것은 실제적인 영적인 지식이 성령의 조명에서 오고, 이 조명은 생명의 성장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메시지를 듣고, 성경을 읽고, 영적 서적을 보며, 다른 사람의 간증을 들을 때, 빛비춤이 없다면 우리는 다만 많은 지식만 쌓게 된다. 이러한 것은 참된 영적 지식이 아니다.이것을 볼 때, 우리는 참된 영적 지식과 생명의 성장과 성령의 조명은 절대적인 관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성령의 조명에서 비롯되는 참된 영적 지식이란 무엇인가?  첫째, 그것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인 우리 영의 

느낌으로서 이것에 의해 처리해야 할 것을 내적인 계시로 느끼게 된다. 둘째, 이 느낌은 하나님의 나타남을 가져오는데, 이것은 우리로 그분의 임재 가운데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느끼게 한다. 예를 들어, 한 자매가 기도 중에 주님께 빛을 받고서 유행을 따르는 그녀의 많은 옷들을 입지 않겠다고 간증할 때, 다른 자매가 그 자매의 간증을 듣고서 스스로 마음에 이르기를, “그 자매가 그런 옷을 입을 수 없다면, 그보다 최신 유행의 옷을 내가 어떻게 입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다. 사실 유행하는 옷에 대한 이 두 번째 자매의 관념은 단지 감정이 섞인 정신적인 지식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것은 성령의 조명에서 비롯되는 영적인 지식이 아니다. 그러나 그 자매는 전혀 다른 상태에도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곧 그 자매가 생각으로 

이 문제를 이해할 뿐 아니라 간증으로 인해 속에 부딪힘이 있는 것이다. 그 자매는 주님의 손가락이 그녀의 유행에 따른 옷을 지적함을 느끼며, 다시는 결코 그 옷을 입을 수 없는 느낌을 주셨다고 느낀다. 이러한 것은 그 자매에게 비추는 성령의 빛이다. 전자의 상황은 그 자매가 단지 머리를 끄덕여 동의하기는 했으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후자의 상황에서 그 자매는 집에 이르기도 전에 “주여, 용서하소서. 이 유행을 따르는 옷에서 저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이러한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간증으로 말미암아 그 자매를 감동시키실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그 자매에게 나타내시며 말씀하신다. 그럴 때 그 자매는 자기가 더 이상 유행을 따르는 옷을 입을 수 없음을 확실히 알게 된다. 이것이 참된 영적 지식으로서 성령의 조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매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적인 지식을 주시고, 우리로 그분의 얼굴에 빛나는 빛을 접촉하기를 갈망하시며, 성령의 계시를 깨닫기 원하신다. 이러한 비춤과 계시는 어떠한 문제에 대해 우리를 책망하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하며, 책망받은 것을 모두 처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공급과 생명의 능력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하심과 구출하심을 우리로 간구하게 한다. 예를 들어, 교회 중에서 전하는 메시지를 생각해 보자. 형제자매들 가운데에는 생명의 성장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성령의 빛비춤도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각자가 얻는 영적인 지식이 크게 다르다. 생명 안에 성장이 더 깊을수록 성령께서 빛비추실 수 있는 더 많은 여지를 주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얻은 영적인 지식은 더 크고 더 깊은 것이다. 

영적인 성장이 얕은 자들에게는, 비록 그들이 같은 집회에 참석하여 같은 메시지를 듣는다 하더라도, 성령의 계시하는 빛이 제한을 받게 된다. 따라서 그들 안에 있는 영적인 지식은 제한되고 얕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영적인 지식, 생명의 성장 정도, 성령의 빛비춤-는 연관되어 있으며 함께 섞여 있다. 참된 영적 지식은 생명의 성장과 성령의 빛비춤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지식은 생각으로 이해하는 것을 포함할 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영 안의 느낌이다. 그것이 우리의 양심을 접촉할 때 영 안의 이 느낌은 양심의 느낌이 된다. 영적인 지식이 결핍되면 양심에도 느낌이 없다. 거의 대부분의 정상적인 양심의 느낌은 참된 영적 지식으로 말미암는다. (생명의 체험, 제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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