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으로 말미암아 살고 행함
갈라디아서
2014-11-03 , 조회 (133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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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때가 찼을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심으로써, 우리가 아들의 자격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갈 4:4-5)

But when the fullness of the time came, God sent forth His Son, born of a woman, born under law, That  He might  redeem those under law that we might  receive the sonship.(Gal.4:4-5)

주님께서 그대의 영과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은혜가 그대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딤후 4:22)
 The Lord be with your spirit. Grace be with you.(2 Tim.4:22)    

4장 5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기 위해 우리를 구속하셨다고 말한다. 아들의 명분을 얻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나서 거룩한 생명과 본성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서 그의 아들들이 되는 거듭남은 생명 주는 영이신 하나님 자신에 의해 이루어진다. 주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또 우리의 구속자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과 구속의 목적은 우리를 아들의 명분 안으로 이끄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받고 구속받았을 뿐 아니라 주와 한 영이다(고전 6:17). 결국 우리는 거룩한 생명과 본성을 가진다. 우리는 하나님과 대체로 하나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실지로 그분과 하나이다. 

주 예수를 믿는 우리는 자신을 낮게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단지 천연적이고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한 영이다. 그런 말이 성경에 쓰여져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원래 하나님의 창조물이었을 뿐이고 타락해서 죄인들이 된 그 사람들이 지금은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한 영이 되었다는 것을 믿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신은 확신을 갖고 당신이 참으로 하나님과 한 영임을 믿는다고 간증할 수 있는가? 당신은 이것을 교리적으로뿐 아니라 체험적으로 깨닫는가? 우리 모두는 주 앞에 자신을 낮추고 기도해야 한다.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당신과 한 영이라는 이상을 보여주소서. 주여, 나는 이것을 단지 교리적인 지식으로 아는 데 만족하지 않습니다. 주여, 하늘을 열으사 나로 하여금 내가 지금 당신과 한 영임을 보게 하소서.』 

주님은 한편으로는 하늘에 계시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영과 함께 계신다(딤후 4:22). 주님은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셨고 우리의 영 안에 거하시지만, 많은 때 우리 자신은 영 안에 있지 않다.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 영 안의 주님을 떠나서 우리 마음과 감정의 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주님을 기쁘게 하지 않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을 때, 우리는 우리가 잠깐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 안에 사는 동안 주님이 우리 영 안에만 머무르시고 우리를 괴롭히러 오시지 말기를 바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자매들은 물건을 사러가고 싶은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서너 시간 동안 주님으로부터 떠나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아무리 주님께 떠나 계시기를 부탁하더라도 주님은 결코 허락하시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고 거듭났을 때 우리의 영이 주님과 연합되었고 우리는 그분과 하나 되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우리 자신을 영 안에서 그와 하나된 것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 우리가 이 연합을 깨뜨리려고 노력할지라도 주님은 허락하시지 않을 것이다. 때때로 젊은 성도들은 그들이 주님의 임재를 훈련하고 그분의 임재를 잃지 않기 위해 어떤 곳에 가서도 안 되며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들이 교회 집회에 가면 주께서 그들과 함께하시지만 영화 구경을 가면 함께하시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관념에 따르면 그들이 영화 구경을 간다면 주님의 임재를 잃는다는 것이다. 교리적으로는 이것이 매우 훌륭하게 들리지만, 실지로 우리의 경험을 볼 때 그렇지 않다. 당신이 영화관에 갈지라도 주님의 임재는 당신이 집회에 있을 때보다 더 분명해진다. 당신은 극장에 감으로써, 주님으로부터 달아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의 기대와는 반대로 당신은 거기 있을 동안 주님이 그분의 임재를 평소보다 더 많이 나타내심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대로 할 자유를 주시기를 주님께 구하면 구할수록 그분의 임재는 더욱 강하게 될 것이다.우리 중 많은 사람이 이러한 체험을 가졌음을 간증할 수 있다. 구원을 받는 것은 중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주님과의 하나 안으로 이끄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고 거듭날 때 그는 삼일 하나님과의 유기적인 연합 안으로 들어간다. 이 연합은 참되고도 생명으로 충만한 것이다. 구원과 구속의 결과, 주님은 그분 자신을 우리 영 안에 분배하며 우리로 그분과 하나되게 하신다. 오순절파의 배경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가끔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어 본다. 우리는 결코 그러한 질문에 난처해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구원받고 거듭나면 성령을 받을 뿐 아니라 주님과 한 영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고 거듭난 자들로서 이제 삼일 하나님과 한 영임을 담대하게 간증할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거룩한 말씀 안에 있는 거룩한 계시이다. 3장 2절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그리고 3장 5절에서 그는, 『너희에게 그 영을 공급하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라고 묻는다. 바울의 질문은, 갈라디아인들이 그 영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 영을 계속 공급하고 계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공급하고 계셨고 그들은 받고 있었다. 놀라운, 신성한 전달이 일어나고 있었다. (갈 LS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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