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법 (2)
로마서
2014-11-15 , 조회 (108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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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원하지 않는 악을 계속 행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면, 그것을 행하는 자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는 죄입니다.(롬 7:19-20)

For I do not do the good which I will; but the evil which I do not will, this I practice.But if what I do not will, this I do, it is no longer I that work it out but sin that dwells in me. (Rom.7:19-20)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속사람에 따라 하나님의 법을 좋아하지만,(롬 7:21-22)

I find then the law with me who wills to do the good, that is, the evil is present  with me. For  I delight  in the law of  God according to the inner man,(Rom.7:21-22)

내 지체들 안에 있는 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오,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겠습니까? (롬 7:23-24)

But  I see a different  law in my members, warring against  the law of  my mind and making me a captive to the law of  sin which is in my members. Wretched man that I am! Who will deliver me from the body of this death? (Rom.7:23-24)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18절). 바울은 자기 안에 선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자기 육신 안에 선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내 육신에」라는 말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당신 속에 선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그 이유는 당신 안에 선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 즉 우리의 타락된 몸 안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육신」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타락된 몸 안에 죄가 그 모든 정욕으로 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전혀 없다.『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19절). 

이 구절은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있음을 증명한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좋은 뜻, 즉 선을 행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원하는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20-21절). 21절은 우리가 선을 행하려고 할 때마다 역사하는 법에 대해 말한다. 이 법이 바로 악이다. 그것은 우리가 선을 행하려고 할 때마다 악이 우리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악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태복음 6장 13절과 요한일서 5장 19절에 있는 「악한 자」와 같은 단어이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오는 것을 보는도다』(22-23절). 22절에서 바울은 속 사람을 따라 기뻐하는 하나님의 법을 말한다. 이 법을 첫째 법이라고 부르자. 23절에서 바울은 마음의 법(생각의 법-원문 참조)을 말한다. 이 법을 둘째 법이라고 부르자. 이 법은 생각의 법이다. 생각은 혼에 속한 부분이므로 그것은 혼 안에 법이 있음을 의미한다. 23절에서 바울은 「내 지체 속의 한 다른 법」을 말한다. 이 법은 우리 지체 속에 있다. 우리 지체는 우리의 육신, 즉 타락된 몸에 속한 부분이므로 그것은 우리 육신 안에 또 다른 법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 세 번째 법은 우리 마음의 법(이 「마음의 법」은 원문대로「생각의 법」으로 

번역되어야 하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마음」과 「생각」을 혼용하여 쓰기로 한다-역자 주)과 싸운다. 7장 23절에서 우리는 두 법이 서로 싸우고 전쟁하는 것을 발견한다. 바울은 우리 지체 속에 있는 「한 다른 법」이 우리를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는다고 말한다.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은 앞에 있는 「내 지체 속에 있는 한 다른 법」과 같은 것이다. 이 법이 세 번째 법이다. 이와 같이 이 한 구절에서 우리는 두 가지 법, 즉 우리 마음에 있는 선한 법과 우리 지체 속에 있는 악한 법을 발견한다.『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 우리의 몸이 사망의 몸이라 불리운 까닭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우리의 몸 안에 우리의 혼 속에 있는 선한 법과 싸우는 악한 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 악한 법이 우리의 몸을 「이 사망의 몸」으로 만든다.「이 사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싸움에 패하여 포로가 되어서 우리 몸 속에 있는 죄의 법에 의해 잡혀가는 사망이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25절). 이 구절은 앞 구절에 제기된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25절에서, 사망의 몸에서 해방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그의 영 안에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긴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는 또한 그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말한다. 7장 7절부터 25절에서 우리는 이 세 가지 법을 보며 그것들이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알 수 있다. (롬 LS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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