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사망)의 법 (4)
로마서
2014-11-16 , 조회 (143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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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원하지 않는 악을 계속 행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면, 그것을 행하는 자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는 죄입니다.(롬 7:19-20)

For I do not do the good which I will; but the evil which I do not will, this I practice.But if what I do not will, this I do, it is no longer I that work it out but sin that dwells in me. (Rom.7:19-20)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속사람에 따라 하나님의 법을 좋아하지만,(롬 7:21-22)

I find then the law with me who wills to do the good, that is, the evil is present  with me. For  I delight  in the law of  God according to the inner man,(Rom.7:21-22)

내 지체들 안에 있는 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오,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겠습니까? (롬 7:23-24)

But  I see a different  law in my members, warring against  the law of  my mind and making me a captive to the law of  sin which is in my members. Wretched man that I am! Who will deliver me from the body of this death? (Rom.7:23-24)

오래 전에 중국 북부 지방에 일어났던 사건 하나를 말하겠다. 특이하게 보이는 오순절 운동이 그 지역에 일어나서 중국의 북부 온 지역을 휩쓸었다. 그들은 성령의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 어떤 정욕도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르침을 근거 삼아 남녀가 함께 동거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신령하며 정욕이 없다고 주장했다. 얼마 안가서 많은 음행 사건이 있었고, 그 운동은 거의 해체되었다. 그런 일 때문에 당분간은 복음을 전하기도 어려웠다. 왜냐하면 중국 사람들은 공자의 윤리적인 교훈 때문에 간음이라면 그 어떤 형태도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북부에 있었던 오순절 운동은 기독교에 오점을 남겼다. 우리는 성령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 육신 안에는 정욕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훈을 주의해야 한다. 

바울은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그는 계속해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른다고 말한다(갈 5:17). 이것은 악한 법과 선한 법의 전쟁이 아니라 육신과 성령의 전쟁이다. 육신과 성령은 서로 거스른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 안에 행할지라도 육신 안에 여전히 정욕이 있으며, 우리의 육신은 성령의 원수가 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주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6절에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말했다. 육은 육이다. 어떤 것도 육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 결코 당신이 신령하게 된 후 당신의 육이 개선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말라. 이 가르침은 큰 잘못이며 위험한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정과 욕심과 함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원문 참조). 우리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로마서 6장 6절과 달리, 갈라디아서 5장 24절은 육신과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구절은 우리가 정과 욕심을 갖고 있는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말한다(원문 참조). 이것은 우리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로마서 8장 13절의 내용과 같다. 우리는 우리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옛 사람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면 자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육신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육신을 계속해서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 단번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매일 계속해서 우리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장 25절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이와 같이 갈라디아서 5장은 우리의 육신과 성령의 전쟁을 계시한다. 대부분의 성경 번역자들은 갈라디아서 5장 25절에 있는 영이 사람의 영인지 성령인지를 결정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생각하지만, 나는 그것이 연합된 영, 즉 성령과 우리의 거듭난 영의 연합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그러한 영 안에서 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장에 있는 전쟁은 우리의 육신과 성령 사이의 전쟁으로서 로마서 7장에 있는 전쟁과는 완전히 다르다. 로마서 7장에 언급된 전쟁은 두 법, 즉 선한 법과 악한 법의 전쟁이다. 그것은 성령과 아무 관계가 없다. 그것은 중국의 어느 고서(古書)에서도 

언급되었는데, 거기에서는 그것을 이치와 정욕의 전쟁이라 했다. 이 책이 말하는 이치란 물론 선의 법이다. 이 서적은 또한 이치와 싸우는 정욕이 인간의 몸 안에 있다고 말한다. 나는 젊었을 때 이 이치와 정욕의 전쟁이 로마서 7장의 그것과 똑같음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므로 어떤 크리스찬 교사가 로마서 7장을 가리켜 바울의 구원받은 후의 경험을 기술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몹시 당황했다. 중국의 고서(古書)에서 언급한 이치와 정욕의 싸움도 로마서 7장에 있는 바울의 경험과 일치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로마서 7장을 그리스도인의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로마서 7장은 바울의 구원받기 전의 경험을 기술한 것이다. 그는 구원받기 전에 하나님의 법에 대해 매우 열심이었고, 하나님의 법을 지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했다. 

중국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했지만, 로마서 2장 14절과 15절에 언급된 사람의 선한 본성을 이해했다. 로마서 2장에 의하면 창조된 사람은 인성 가운데 세 가지 적극적인 것을 갖고 있다. 첫째는 선한 본성이다.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하는(롬 2:14) 것은 율법의 행위(기능)가 마음에 새겨진 것을 보여 준다(롬 2:15). 둘째로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다(롬 2:15). 셋째로 사람에게는 송사하고 변명하고 정죄하며 판단하는 이성(理性)이 있다(롬 2:15). 모든 사람은 이 세 요소를 갖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도 다 이것을 소유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선한 본성과 양심과 이성이 있다. 사람 속에 있는 이 세 요소 때문에 선한 법과 악한 법 사이의 전쟁, 즉 중국 서적에 나오는 이치와 정욕 사이의 전쟁이 있다. (롬 LS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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