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두 방면을 예표함
교회의 의의
2014-11-30 , 조회 (110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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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시고, (눅 24:26)

Was it not necessary for the Christ to suffer these things and enter into His glory? (Luke.24:26)

끝으로 구약에서 일곱 번째로 교회를 예표하는 여인은 술람미이다(아 6:13). 술람미는 솔로몬의 왕비이다. 솔로몬은 부활하시고 영광을 얻으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러므로 술람미는 부활하고 영광을 얻은 교회를 예표한다. 어떤 이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얻으시는 것은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영광 안에 들어가셨다고 말한다. 누가복음 24장 26절에서 주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영광 안에 들어가실 것을 언급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늘에 계시든, 장래에 이 땅에 오시든, 오늘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든 원칙적으로 모두 영광 안에 계신 것이다. 이와 같이 솔로몬은 영광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리스도는 영광을 얻으시기 전에 이 땅에서 각종 고난을 통과하셨고 마지막으로 죽으셨다. 다윗은 고난을 거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고난받고 종군(從軍)하는 교회를 예표한다. 솔로몬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얻으셨음을 예표하고, 그의 왕비 술람미는 영광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부활을 누리는 교회를 예표한다. 아가서는 술람미가 어떻게 솔로몬을 체험하며 누리는지를 말하는데, 

이것은 교회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아가서에서의 그리스도는 죽음을 거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시요, 죽음에서 나와 부활 안으로 들어가신 그리스도이시다. 오늘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매일 체험하는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은 우리가 매일 접촉하고 교통하는 그리스도는 아가서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요,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이 땅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의지해 걸어갈 때, 우리는 고난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살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부활의 능력을 의지할 때만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면에서 다윗과 솔로몬은 연결된다. 결코 다윗이 죽은 후에야 솔로몬이 있은 것이 아니다. 다윗이 있을 때 솔로몬이 있었다. 한 시기가 지나고 또 다른 시기가 온 것이 아니다. 이 두 시기는 하나의 체험의 양면이다. 다윗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면, 즉 생활상의 발자취를 예표한다. 솔로몬은 그리스도 영광의 면으로서 승천 안에 계신 그분의 능력을 예표한다. 주님은 예수의 면이 먼저이고, 그리스도의 면이 나중이다. 다윗이 먼저이고 솔로몬이 나중이다. 그러나 우리의 체험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먼저이시고 예수가 나중이시며, 솔로몬이 먼저이고 다윗이 나중이다. 우리가 가장 먼저 접촉하는 분은 예수님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실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말이다. 신약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을 찾을 수 없다. 사람이신 예수님을 우리는 믿을 수 없다. 우리가 믿는 것은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다. 그분은 사람의 제한을 돌파하셔서 이미 부활하셨고 성령 안에 계신다. 그분은 사망에서 나오셔서 영광 안에 들어가셨다. 이 영광은 부활이자 성령이다. 성령과 부활과 영광, 이 세 가지는 나눌 수 없다. 이 세 가지는 사실 하나이다. 주님은 부활 안에 들어가실 때, 영광 안에 들어가셨고 성령 안에 도달하셨다. 엄격히 말해서 이때 그분은 예수가 아니시고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예수는 영광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되셨다. 

사실 우리가 믿는 것은 그리스도이다. 성경에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거나 그리스도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말(갈 2:16, 3:26, 빌 3:9, 딤후 3:15)은 있어도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먼저 접촉하게 된다. 부활 안에 있는 것은 곧 성령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을 통해 그분은 우리 속을 만지시고, 우리도 안에서 그분을 만지게 된다. 이것은 공중의 전파가 라디오의 수신기를 만날 때 효력이 나타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 안에 그 영과 연결하는 믿음이 있을 때, 그 영은 우리 속을 만지시게 되고 우리는 안에서 그 영을 만나게 된다. 그 영은 곧 부활이시요 또한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접촉한 분이다. (교회의 의의, 제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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