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처리하는 정도
생명의 체험
2014-12-01 , 조회 (17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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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나 자신도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하여 항상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간직하려고 훈련하고 있습니다.(행 24:16)

Because of this I also exercise myself  to always have a conscience without  offense toward God and men. (Acts. 24:16)


우리가 양심을 처리하는 정도는 죄와 세상을 처리하는 정도와 마찬가지로 ‘생명과 평강’이 있기까지이다. 우리는 속에 평강과 생명을 느끼는 정도에 이르기까지 처리해야 한다. 우리는 안식과 안전과 확신을 느낄 뿐 아니라, 강함과 빛비춤과 만족함도 느껴야 한다. 어느 것이든 생명과 평강이 결여되어 있다면, 우리가 처리한 것이 충분히 철저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 생명과 평강의 느낌이 언제나 변함없이 유지될 수는 없다.도리어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마치 생명과 평강의 느낌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공허하고 혼동되며, 불안하고 불안전함을 다시 느끼게 될지 모른다.

 이러한 상태의 원인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부주의와 실패인데 이 때문에 우리가 또다시 더럽게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계속 양심에 따르고, 은혜의 공급을 받아들이며, 생명 안에서 자라고 생명의 빛비춤이 확대될 때 하나님의 속 생명이 요구하는 기준이 크게 향상되는 데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인하여 우리는 생명과 평강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처음에는 우리에게 생명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우리 안에 이러한 느낌이 모호하다. 다시 말하면 ‘생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의 결핍을 느낄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내적으로 배워야 할 깊은 교훈과 외적으로 우리가 처리해야 할 부수적인 문제를 가지고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 만일 이때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 더 밝혀줄 빛을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사 우리에게 처리되어야 할 문제들을 보여 주실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한 빛이 분명해질 때, 생명의 결핍으로 인해 모호하던 느낌이 불안한 느낌으로 뚜렷이 드러난다. 이 느낌이 양심의 느낌이다. 우리는 속에 생명과 평강의 상태를 회복할 때까지 이러한 느낌을 따라서 처리해야 한다. 이러한 반복되는 처리의 주기는 우리를 반복해서 정결케 하며, 우리를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한다.(생명의 체험,제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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