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과 제사장 직분에 의하여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2014-12-02 , 조회 (134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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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께서 육체가 되시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니, 은혜와 실재가 충만하였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에게서 온 독생자의 영광이었다.(요 1:14)

And the Word bacame fresh and tabernacled among us(and we beheld His glory,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reality.(John. 1:14)   

우리는 어떻게 그 땅에 들어가서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얻는지를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러한 분을 얻고 싶다면 그분을 조금씩 누리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예표인 유월절 어린양을 누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반드시 출발해야 할 지점이다. 그런 다음 그들은 계속 전진하여 하늘에 속한 만나와 생수가 흘러나오는 반석으로서 주님을 누렸다. 이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의 예표이지만, 초보적인 예표일 뿐이다. 그것들은 그렇게 깊거나 풍성하지는 않다. 우리는 그 정도의 체험이면 아주 충분하다고 인식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다만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궤와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증거를 보았다.

 이 궤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예표인데 그것은 훨씬 더 견고하고 풍성하다. 여러분이 궤를 어린양과 만나와 생수가 흘러나오는 반석과 비교해 본다면 많은 진보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의 더 많은 부분이 궤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유월절 어린양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구속하신 분으로,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들을 위해 피 흘려 죽으신 분으로만 깨달을지 모른다. 만나는 더 진보된 것이요, 참으로 좋은 체험이다. 만나를 통해 우리는 식물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을 맛보고, 동시에 하나님의 건축을 위해 변화된 재료인 진주를 접하게 된다. 이러한 체험들도 정말 좋지만 궤에 비할 수는 없다. 궤의 체험은 훨씬 더 견고하고 그 내용은 비교할 수 없이 풍성하다. 궤에는 하나님 자신에 관해 기록된 것이 있다. 궤의 내용에 의해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본성을 알 수 있다.

궤와 더불어, 궤의 체현이자 확장과 증가인 성막이 있다. 이 성막은 그리스도의 확장이요 표현이다. 왜냐하면 성막의 주요 부분이 궤와 정확히 똑같은 본성이기 때문이다. 궤는 금을 입힌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성막도 동일한 재료와 동일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성막이 그리스도의 몸, 교회인 그리스도의 확장과 표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성막이 마흔여덟 개의 나무 널판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막은 몸의 많은 지체들을 상징하는 많은 널판들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 안에서 지체들은 모두 신성한 금으로 싸이고 묶임으로써 함께 건축된다. 그들은 금 안에서 하나이다. 그들은 금으로 덮여 있고 금 고리와 금 띠에 의해 서로 결합되어 있다. 만일 그들이 금 밖으로 나온다면 그들은 조각조각 떨어져 서로 분리될 것이다. 

그들은 사람의 본성 안에서는 나무 조각들이지만 신성한 본성, 곧 삼일 하나님 안에서는 모두 하나이다. 더욱이 성막이 네 층의 덮개로 덮여 있는 것과 똑같이 그들은 모두 네 층의 그리스도로 덮여 있다. 그리스도의 표현이자 확장인 교회는 그러한 덮개 아래 있다. 마흔여덟 개의 이 모든 널판들은 은 받침 위에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근거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신성한 금으로 싸이고 묶이며, 네 층의 그리스도로 덮이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의 근거 위에 서 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증가요 표현인 교회이다. 우리는 이것이 유월절 어린양과 만나와 생수가 흘러나는 반석보다도 훨씬 분량이 크다는 것을 깨달을 수있다. 여기에 견고한 것이 있다.

 안에는 하나님의 증거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밖에는 그리스도 자신의 참된 표현인 그분의 확장이 있다. 이 그리스도는 그 땅을 소유하기 위하여 계속 전진하는 사람들의 중심이시다. 만일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얻고 싶다면, 우리는 자신 안에 증거를 가지고 계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타남이자 표현이신 그러한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심으로 가져야 한다.그리고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확장, 이 그리스도를 위한 성막, 이 그리스도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중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러한 확장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그 땅을 점령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을 엄청나게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이 항상 증가하고 확장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어린양을 먹고 누림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작은 어린양이다. 비록 그것은 완전하고도 온전하지만 아주 작다. 다음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 즉 우리에게 공급된 양식으로서 매일 누리고, 또 생수가 흐르는 반석으로서 매일 누린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더욱더 커지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증거, 하나님의 나타남과 설명으로서 누리기 시작한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더욱더 충만한 정도로, 보다 견고하게 형상을 이루어 가신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올 때 이것이 우리의 중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자신의 본성을 읽어낸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확장, 그리스도의 충만,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체험과 증거가 되어야 한다.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 제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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