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의미 (1)
교회의 의의
2014-12-25 , 조회 (1042)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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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 것이고," (요 11:25)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ho believes into Me, even if he should die, shall live;(John.11:25)


부활은 주님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주님은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나는 부활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나’는 1장 1절에서 말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에서의 ‘하나님’이다. 요한복음에 계시된 주 예수님은 다른 세 권의 복음서의 주님과 다르다. 다른 세 권의 복음서는 주 예수님의 사람의 면을 중시했다면, 요한복음은 주 예수님의 하나님의 면을 중시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나는 부활이니”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나’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11장 25절에서 그분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세 권의 복음서에서는 이런 말이 없다.

 그분은 누가복음에서는 사람으로, 마가복음에서는 노예로, 마태복음에서는 왕으로 언급되었다. 세 권의 복음서는 역사와 지리와 하나님의 기적 등에 관한 각 방면의 기록에서 공통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다르다. 요한복음은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분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의미는 부활은 하나님이시고 생명 또한 하나님 자신임을 가리킨다. 무엇이 부활인가? 부활은 생명이고 또한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께서 계실 때부터 부활이 있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계시는 한 부활은 있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삼 일이 지난 후에야 부활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시간 안에 계시지 않은 것처럼 부활도 시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장 21절부터 26절까지에서 마르다는 예수님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대답하셨다. 마르다가 다시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다. 마르다는 계속해서 부활을 시간 안으로 가져왔다. 그러나 사실 부활은 시간 안에 있지 않다. 

부활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께서 계실 때에 부활이 있는 것이다. 도대체 부활의 의미는 무엇인가? 부활을 알 때만이 우리는 무엇이 영에 속한 체험인지 이해하게 된다. 부활은 단지 생명이 아니다. 생명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 부활이다. 다시 말해서 부활이란 생명에, 그 생명을 묶거나 가둘 수 없는 것이 더해지는 것이다. 생명만 있는 것은 부활이 아니다. 반드시 그 안에 가두거나 묶어 둘 수 없는 것이 더해져야 한다. 한 알의 씨앗은 마치 한 알의 생명과 같다. 우리가 이 생명을 흙 속에 심고 묻어둔다면, 생명이 그 안에서 뚫고 나올 것이다. 생명이 흙을 뚫고 나올 때 이것은 생명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부활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15장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부활의 의미이다. 부활은 다만 생명이 아니다. 그 생명이 어떤 속박도 받지 않고 심지어 사망에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행 2:24-32). 우리의 하나님은 생명이시요 또한 부활이시다. 어떤 것도 그분을 속박하거나 가두어 둘 수 없다. 어떠한 환경이나 어떤 사람과 사물도 그분은 돌파하신다. 어떠한 것도 그분을 압제하거나 묶을 수 없다. 어떠한 쇠사슬도 그분에게는 의미가 없고 효력이 없다. 그러므로 부활의 의미는 바로 생명이 모든 묶임과 압제와 구속을 돌파하여 그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이시요 부활이시다. 그런데 이 둘의 의미는 서로 다르다. 

하나님께서 부활이시라는 면이 그분께서 생명이시라는 면보다 더 중요하다. 이 생명은 어떠한 환경의 압제나 묶임을 받지 않는다. 심지어 이 생명은 사망까지도 뚫고 나간다. 그분은 사망의 묶임을 받으시지 않는데 이것이 부활이다. 부활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삼 일 후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 부활은 우주를 창조하기 전에 이미 있었다. 태초에 영원 안에서 그분은 생명이셨고 부활이셨다. 어느 날,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들어오셨다. 이 육체는 그분을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그분은 직접 이 감옥 안에 들어오셔서 그 안에서 제한을 받으셨다. (교회의 의의, 제 9장)

 

요한복음 11장 25절,마르다 부활이요,생명이니 오라비, 씨앗,환경 속박,압제 쇠사슬, 돌파 감옥, 제한,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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