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의미 (2)
교회의 의의
2014-12-25 , 조회 (1265)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능력과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알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빌 3:10)  
 
To know Him and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the fellowship of His sufferings, being conformed to His death,(Phil. 3:10)

주님은 삼 년 반 동안 멸시와 박해를 받으셨다. 그리고 심문과 매맞음과 수치를 당하셨다. 그분은 밖으로 많은 고난 가운데 계셨고 나사렛 예수라고 멸시를 받으셨다. 그러나 그분 안에는 오히려 부활이 가득했고, 부활은 그분 안에서 능력이 되었다. 부활의 능력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그분은 부활 안에 계셨기 때문에 능히 나사렛 예수의 길을 가실 수 있었다. 그분은 태어나시고 땅에서 사시고 죽으신 후에 부활하신 것이 아니다. 태초에 영원 과거 안에 부활이 있었다. 이 부활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부활이신 주님께서 낮아져 사람 안에 오셨을 때, 사람의 박해와 압제와 어려움 가운데 떨어졌고, 반대하는 각종 환경 안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이시기 때문에 어떤 것도 그분을 압제하거나 속박하거나 가두어 둘 수 없었다. 삼십삼 년 반 동안 사망의 요소이자 사망의권세를 잡은 마귀 사탄은 있는 힘을 다해 모든 것을 동원하여 부활이신 하나님을 묶고 압제하여 구속하고자 했다. 하나님께서 만일 육체 안에 들어오시지 않았다면 사탄은 그분을 묶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육체 안에 넣으심으로 사탄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셨다. 하나님은 아마도 “사탄아 오너라. 너에게 나를 묶게 하겠다. 너의 모든 것을 나에게 두고 나를 압제하도록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을지도 모른다. 결국 사탄은 심지어 사망까지도 이 부활 위에 두었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은 죽음도 그분을 묶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두려움도, 심지어 사망도 그분을 묶지 못했다. 그분은 사망을 뚫고 나왔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다. 부활은 그분께서 사망에 들어가시기 전에 이미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 3:10)라고 말했다. 이 부활의 권능은 하나님 자신이고 죽은 자를 부활하게 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주 예수님은 먼저 예수이셨고, 뒤에 그리스도이셨다. 그분은 먼저 나사렛 사람의 생활을 사셨고, 후에 그리스도의 영광 안에 계셨다. 이것은 내적인 것이다. 그분은 죽음에서 부활하시기 전에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분께서 부활이심을 알리셨다. 그분께서 사람 안에 계셨을 때 사탄은 모든 부정적인 것들로 그분을 압박했지만 그분은 그 안에서 나오셨다. 

이것은 그분께서 부활이심을 증명한다. 주님을 믿었을 때 우리는 육체가 되신 그리스도를 믿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쪽에 불과하다. 우리는 죽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은 것이다. 로마서 10장 10절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말한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성경 전체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믿는다거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한 부분을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다. 우리가 이렇게 그분을 믿을 때 부활의 주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를 원하신다. 이 말은 매우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체험 안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주님을 믿은 후 우리는 사람에게서 박해나 어려움을 받을 수 있다. 그때에 우리는 밖으로 압력을 받아 고통스럽지만 안으로는 오히려 영광스럽게 느끼게 하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밖으로 눈물을 흘릴지 모르지만 안으로는 오히려 기쁘다. 그 능력과 영광과 기쁨이 바로 부활이며, 우리 안에 계신, 솔로몬이신 그리스도이다. 술람미는 비록 장래 영광을 얻을 교회를 예표하지만 또한 오늘날 부활 안에 있는 교회를 예표하기도 한다. 술람미의 예표는 장래의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의 주관적이며, 오늘날 우리의 주관적 체험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측면에서 부활은 두 개의 시기로 나뉜다. 

하나는 나타나기 전의 부활로, 영원 안에서 부활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나타난 부활로,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삼 일만에 죽음에서 나와 부활하신 것이다. 그날, 주님의 부활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거기에 부활이 있었다. 부활은 시간 안에서 나타났지만 그 나타남이 많지는 않았다. 주 예수님께서 산에서 변화되신 그날 조금 나타났다. 그분은 이 땅에서 삼년 반 동안 고난을 당하셨으나 실족하신 적이 없고 실패하신 적이 없다. 사람이 어떻게 그분을 기만하고 압제하고 위협하든 그분은 변함이 없으셨다. 이것은 부활의 표현이다. 부활은 어떤 사람이 해 낸 것이 아니라 표현된 것이다.(교회의 의의, 제 9장) 

빌립보서 3장 10절,부활능력 고난,고통,형상죽음,환경 압제,속박 사망 권능,압박 박해,어려움 위협,실패

트랙백:  수신불가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