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의미 (3)
교회의 의의
2014-12-25 , 조회 (1258)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능력과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알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빌 3:10)  

To know Him and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the fellowship of His sufferings, being conformed to His death,(Phil. 3:10)


부활의 나타남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 구원을 얻은 한 형제가 있었다. 1900년 의화단의 난이 일어났을 때, 그는 겨우 10대 소년이었고, 베이징(北京)의 어느 한 상점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당시 의화단은 그리스도인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그래서 베이징의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어느 날 그 소년이 상점 안에 있을 때, 갑자기 길가에서 큰 소리가 났고, 소년은 문 틈으로 밖을 보았다. 길가에는 의화단이 두건을 두르고 손에 칼을 들고 흉악하게 차를 호송하고 있었다. 그 위에는 스무살 정도의 젊은 여인이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은 까닭에 붙잡혀 형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사람치고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자는 대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두려움 없이 심지어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여 찬송가를 부르며 차에 앉아 있었다. 소년은 상점 안에서 이 장면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결국 그는 주님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도 나가서 주 예수님을 전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날 그 자매가 의화단에게 붙잡혀 가면서 보여 준 광경은 부활의 나타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 예수님께서 아직 죽고 부활하시기 전에 그분은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학대와 어려움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 나타내신 것은 부활이었다. 어느 날 그분은 부활하셨다. 이것은 완전히 부활 안에 들어가는 것이요, 죽음에서 부활한 광경이다. 오늘날 교회도 이러하다. 그날에 이미 죽은 성도들은 부활할 것이다. 

살아 있는 성도들도 변화되어 들림 받을 것이고, 우리는 실제적으로 부활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 전에도 우리는 오늘날 부활 안에 살 수 있다. 오늘날 부활은 우리 안에 있다. 많은 때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저주받고 어려움을 당하며, 많은 시험과 유혹이 몰려온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주님의 빛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활의 나타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님에게든 우리에게든 부활이 두 시기를 갖고 있음을 분명하게 본다. 술람미는 부활한 교회를 예표하는데, 거기에는 두 시기가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시기보다 첫 번째 시기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주관적인 체험이기 때문이다. 

상아 궁 안에서 솔로몬과 함께 생활하는 술람미는 바로 지성소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교통하는 교회를 예표한다. 이것의 중점은 장래의 부활이 아니라 오늘날의 부활 안에 있는 생활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부활 안에 사는 사람들이다. 부활 안에 있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이다. 자신 안에 있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가 스스로 노력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부활 안에서 우리 안에 도달하심으로써 우리의 능력이 되시고, 우리로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하신다. 겉으로 볼 때 이 길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 가운데 있는 사람은 하나의 능력이 있음을 안다.

 이 능력은 바로 부활 안에서 우리 안에 도달하셔서 우리의 솔로몬이 되신 하나님이다. 그분은 우리가 다윗이 걸었던 길을 가고 다윗이 가졌던 생활을 하도록 우리를 밀어내신다. 우리는 안으로는 솔로몬이요, 밖으로는 다윗이다. 우리는 안으로는 술람미이며, 밖으로는 아비가일이다. 사실 이 둘은 나누어진 시기가 아니고, 안과 밖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많든 적든 안으로는 솔로몬이요 밖으로는 다윗인 체험이 있다. 우리는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박해받아 광야를 표류하는 슬픔의 아들들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달콤하고 영광스러운 한 능력과 한 교통이 있다. 우리 안에는 한 하나님, 한 영, 한 솔로몬이 있는데, 이는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라고 말할 수 있었다. 솔로몬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다윗의 길을 능히 갈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실 때 우리는 능히 나사렛 예수의 길을 가게 된다. 이것이 깊이 있고 수준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어린양이 신부를 취하는 것은 장래의 일이지만, 체험적으로 우리는 이미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했고 그리스도와 결혼했다. 부활 안에서 우리는 이미 새 예루살렘에 있고 결혼 생활 안에 있다. 이것이 술람미가 예표하는 중점으로서 미리 맛보는 생활이다. 오늘날 교회는 부활 안에 있고 이미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과 하나가 되었다.(교회의 의의,제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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