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역 (1)
새 예루살렘
2015-01-03 , 조회 (124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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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케도니아로 갈 때, 그대에게 에베소에 머무르라고 권유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대가 어떤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다른 것들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또 꾸며 낸 이야기와 끝없는 족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킵니다.(딤전 1:3-4)

Even as I exhorted you, when I was going into Macedonia, to remain in Ephesus in order that you might charge certain ones not to teach different things Nor to give heed to myths and unending genealogies, which produce questionings rather than God's economy, which is in faith.(1 Tim.1:3-4)

우리는 그분의 긍휼로 이렇게 이상을 보기를 추구하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보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 모두는 무엇인가를 사역하지 않고, 이 하나의 유일한 신약의 경륜을 사역했던 초기의 사도들과 같아질 것이다. 물론 그들은 많은 항목들을 다루었다. 바울은 머리에 수건 쓰는 것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가르쳤지만(고전 11:2-16), 그는 삼일 하나님의 분배하심의 범위 안에서 그것을 했다. 머리에 수건 쓰는 것까지도 이러한 이상 아래서와 이러한 범위 안에서 가르쳐졌다. 바울은 신약의 경륜을 떠나 어떤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신약의 경륜이란 하나님이 택하시고 구속하시고 거듭나게 하신 모든 백성들 안으로의 신성한 삼일성의 분배하심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흥미를 일으킴으로써 한 무리를 매혹시키려는 동기로 어떤 것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사역은 무리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일을 위한 시장을 얻으려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의 흥미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사역은 그분의 영원한 경륜에 따라 그분의 신약 경륜에 의해 삼일 하나님을 사역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과거 반세기에 걸쳐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신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일단 여러분이 주님의 신약의 사역의 간행물을 접한다면 특별한 맛을 볼 수 있다고 간증할 수 있다. 그것은 신약의 사역의 신성한 본성에 있어서 특별한 어떤 것이다.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이 사역에 대해 무엇인가를 배우려면 여러분은 이것을 배워야 한다. 여러분은 주님이 그분의 회복 안에서 열어주신 모든 것들 안으로 잠수해야 한다. 

여러분이 이러한 것들 안으로 깊이 들어간다면 여러분은 교육될 것이며 건축될 것이다. 인간적으로 말해 철저히 교육받기 위해 여러분은 국민학교 육 년과 중·고등학교 육 년, 대학교 사 년을 통과해야 한다. 이렇게 공부한 후에 여러분은 연구할 자격이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나는 여러분 모두가 주님이 지난 육십 년 간에 걸쳐 우리에게 주신 도움에 의해 얼마의 시간을 들여 거룩한 말씀 안으로 잠수하기를 바란다. 나는 우리가 발간한 거의 모든 서적들이 여러분의 책장에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여러분은 모든 중요한 요점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여러분은 아직 성경책의 많은 것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것은 여러분이 아직도 낡은 것들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다시 하나의 예로 찬송가 1348장(영어 찬송)을 들고 싶다. 

사실상 이 찬송가는 우리 가운데 있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쓰여졌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찬송가 안에 넣어졌고 수년동안 우리가 사용해 왔다. 그것은 결국 편집되었고 우리 부록의 최종 편집에 넣어졌다. 우리 모두는 몇 년 동안 이 찬송가를 불러왔으나 아무도 그것이 우리와 무관한 것이었음을 깨닫지 못했다. 우리는 불신자들을 위한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비록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고는 할지라도 우리가 부른 이 찬송가는 우리가 결코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과, 우리가 결코 성 안에 있지 않고 항상 성 밖에 있으리라는 것과, 우리에게 생명 나무를 먹을 권리가 없고 그 나무 잎사귀들을 누릴 수 있을 뿐이라는 것과, 우리가 여전히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라는 관념을 전달해준다. 

이것이 계시록 21장에 완전히 계시되며 회복역에 분명한 부제(副題)가 있었는데 아무도 이러한 깨달음을 갖지 못했다. 우리는 계시록에 대한 훈련 안에 있었고 그 훈련을 반복했지만 모든 사람이 잊어버렸다. 이것은 비단 한 가지 예이다. 나는 회복역 각주들로부터 오십 개의 다른 요점들을 뽑아서 진리의 다른 항목에 대하여 여러분을 점검해 줄 수 있지만 여러분 중 한 사람도 나에게 대답해 줄 수 없을 것이다. 다이아몬드나 보물들이 모두 여기에 있으나 우리는 사람들을 사로잡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귀한’ 어떤 것, 다르고 낯선 새로운 어떤 것을 얻기 위해 다른 근원들로 간다. 이것은 신약의 사역이 아니다. 이것은 디모데 전서 1장 3절에 언급된 다르게 가르치는 것이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그가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이들을 명하여 다르게 가르치지 말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바울은 또한 4절에서 이러한 사람들을 명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관심하게 하도록 하라고 명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한다. 나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금처럼 보이나 사실은 금이 아닌 ‘구리’와 같은 것을 사역하도록 하나님의 원수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이용당하거나 불법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구리를 원하시지 않는다. 구리는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표현할 금을 원하신다. 결국 새 예루살렘 안에는 구리는 없을 것이며 금만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러한 것을 보아야 한다. (새 예루살렘, 제 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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