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계시.2000교회사에 대한 개략
간추린2000년교회사
2015-01-06 , 조회 (34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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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위격에 관한 논쟁과 신경의 내력
1세기 말 교회 역사에서 아주 커다란 논쟁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위격에 관한 논쟁이 었다. 그리스도는 도대체 하나님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어떤사람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하고 어떤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오지 않았으므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단을 반박하기위하여 요한복음을 섰다.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닌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함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증명한다. 또한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시지않았다"라고 말하는 이단을 반박하기 위하여 요한일서를 썼다. 주후 325년 콘스탄틴 황제는 니케아회의를 소집하여 그가 의자으로서 권위를 행사하여 니케아 신조를 정하였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지금도 여전히 이것을 의심치 않고 돈독히 믿으며 신조의 기초가 되는 "사도신경"을 지키고 있다.
처음 6세기 동안에 있었던 그리스도의 위격에 관한 일곱가지 서로 다른 견해
1.첫번째 부류는 그리스도는 오직 신성만 있으며 인성은 없다고 말한다.이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2.두번째 부류는 그리스도는 인성만 있으며 신성은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는 사람이시고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3.세번째부류는 그리스도의 의 신성이 있기는 하지만 완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4.네번째 부류는 그리스도는 사람이지만 그분의 인성은 불완전하여 오직 사람의몸과 사람의혼만가지고 있고 사람의 영은 없다고 말한다.

5.다섯번째부류는 한사람이 두가지본성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기때문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나뉘어 있으며 합해질수없고 반드시 두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6.여섯번째부류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함께 융합되어 제 3의 본성을 산출한다고 말한다.
7.일곱번째 부류는 정통파로서 정확하고도 성경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신성과인성을 겸하여 가지고 있으고. 이 두본성은 각각완전하며 또 하나로 연합되어 있어 결코 제 3의 다른 본성을 산출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시고  하나님-사람.사람-하나님이신 한분임을 의미한다. 그분은  비록 신성과 인성을 다 갖고 계시지만 오히려 여전히 한분이시다.이것이 성경의 계시이다.

로마천주교와 중세 암흑시대
콘스탄틴 황제가 니케아 종교회를 소집하여 신경을 정한때로부터 교회는 정권에 연루되어 로마 천주교가 형성되는 발전 되었다.5세기에 로마의 교구장 레오1세는 자신을 교회 가운데 최고의 권위로 여기고  제 1대 교황이 되었다. 6세기가 되어 로마천주교과 완전히 형성되었으며 교황제도가 확립되었다. 지중해와 유럽을 둘러싸고있던 모든 기독교는 교황의 수하에 있었으며 로마천주교에 속해 있었다.그리고 그들은 10세기 동안 평신도가 성경을 읽는 것을 금지하였다.

국교회
루터의 종교개혁후 독일은 국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루터는 국교회가 합당치 않음을 알았지만 독일의 보호를 필요로 하였던  그는 이 일에 있어서 강하지 못했다. 이후에 영국. 덴마크. 스웨덴도 계속하여 이를 본받아 국교회를 세웠다. 국교회는 국왕이나 황제가 최고 권위자라고 생각한다.

교파
이때에 주님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일으켰는데 그들은 성경으로 부터 많은진리를 발견하여 그들이 본진리를 실행하기 원했다. 그들은 로마 천주교의 통치를 받지 않았고 국교회의 관할 아래 있지도 않았다. 이러므로 17-18세기에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등과 같은 많은 자유단체가 생겼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독립교회 곧 사립교회 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각 교파들이다.

종교조직과 성직자계급
사도들이 죽은 두 세기 후 안디옥교회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라 불리는 성경교사가 일어났는데 그는 주님을 무척 사랑하였으며 주님을 위하여 순교하였다. 그러나 그는 커다란 잘못을 범했다.그것은 그가 쓴 글에서 감독과 장로는 서로 다른 두사람이라고 구분하였으며 감독에게 특별한 권위를  부여해 준것이다.

그는 장로를 한지역을 책임지는 자라고 생각했으며 여러지역의 교회가 하나로 합쳐져서 한교구를 형성하고 감독이 이교구를 관리 하므로 감독이 장로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이러한 절못으로 인하여 이후에 종교조직이 생겨났다. 이것을 근거로  장로 위에 감독이 있고 감독위에 주교가 있으며 주교위에 대주교가 있고 대주교위에 로마의 홍의 주교 혹은 추기경이 있으며 추기경 가운데서 교황이 산출된다.

이와같은 여러단계의 감독제도가 바로 "성직자 계급제도"이다. 역대로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로마 천주교의 성직자 제도를 거절했다.  그러나 격국 국교회 안에 여전히 성직자제도가 있었고 소위 독립교회 안에도 목사제도가 있게 되었다. 이모든것이 중간 계급이다.

사도들이 이 땅에 있었을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준수하였다. 주님은 마태20장26절에서 "누구든지 크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여러분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각지에 장로들을 세웠다. 장로는 결코 큰자로서 많은 사람을 주관하지 않는다.(벧전 5:1-3).  장로는 다만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좀더 연장하고 비교적 노련하며 체험이 있고 안목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물론 그들이 반드시 모두 다 나이든  형제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그들을 감독이라고 칭한다.(행 20:28 딤전 3:1-2)

장로는 일반적으로 비교적 성숙한 사람을 가리킨다. 감독은 장로들이 마땅히 해야할 일인 장로의 직분을 가리킨다.장로와 감독 이둘은 실제로 같은 무리를 가리킨다. 사도행전 20장에서의 바울의 말은 에베소의 감독이 에베소의 장로임을 분명히 가리킨다.(행 20: 17.28절)

모라비아 형제회
16세기에 각종 자유단체들이일어났는데 그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형제'라 불렀다. 그들은 조직을 원하지 않았으며 성직자 계급도 원하지 않았고 피차 서로 형제라고 불렀다.그래서 천주교와 국교회의 반대와 핍박을 받았다.모라비아에서 핍박을 피해 진젠돌프백작의 영지에 들어와 종전의 교회의 가르침을 회복하여 서로 사랑하며 하나안에 교회생활을 실행하였다. 그들의 집회의 광경이 교회생활을 100펏센트 회복했다고 말할수은 없지만 거기에 최소한 70퍼센트의 교회생활은 있었다.

영국의 형제회
1800년대에 하나님은 영국에서 한무리의 형제들을 일으키셨다.그중에 인도하는 존 넬슨다비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이 본것은  진젠돌프와 모라비아형제들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다. 워치만니 형제님은 영국의 형제회를 빌라델피아교회의 실현이라고 말한바있다. 이것은 형제들의 당초의 광경이 교회 생활을 완전히 회복했음을 증명한다. 또한 진리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풍부 했으며  영적인 상태가 아주 좋았다.

형제회의 분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닫힌 성경을 열어놓았지만 결코 성경을 해석하지 못했다.사람들은 여전히 성경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았다. "영국 형제회 가 일어나서야 비로서 성경은 해석되기 시작하였다." 예언이나 예표 할것 없이 거의 모두 다 해석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은 성경에 대한  자신들의 전대미문의 인식으로 인하여 지나치게 교리를 주의 하는 쪽으로 흘러가서 분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들가운데 가장 심하게 분쟁이 일어난 것은 휴거에 관한 것이었다. 다비는 성도의 휴거가 대환난 전의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와 함께 인도했던 벤자민 뉴톤은 성도의 휴거가 대환난 후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두사람은 쟁론이 일어났다. 동시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위격에 관해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두사람은 나누어졌으며 베자민 뉴톤은 제명되었다.

그때부터 형제회는 다툼과 분열로 인해 1차 세계대전후에 이미 150여개의 분파로 나누어졌고 지금까지 형제회는 천여개의 분파가 있다고 말할수 있다.형제회는 나누어지고 나누어졌다. 

중국에서의 주의 회복의시작
영국의 형제회가 일어난 후 100년이 지나가고 1920년이 되었을 때 서방에서의 이런혼란한 상황으로인해 주님은 갈길이 없었으므로  중국이라는 이방땅으로 가셔야 했다. 1930년도에 워치만니형제님과 나는 이문제에 대하여  한번이야기 한적이 있었다. 그때 형제님이 하신 말씀이 내게 깊은 인상을주었다.

워치만니는  나에게 "형제님 아십니까.주님께서 우리를 일으키셨을때 서방세계에는 정상적인 생활이 이미 훼손되었읍니다. 서방은 천주교. 국교. 사립교회가 이미 너무나 혼란스러워 졌습니다. 후에 형제회가 일어났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더 심하게 나뉘었읍니다. 그래서 서방은 분열과 혼란의 기독교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길이없으셔서 부득이 처녀지인 중국 땅으로 급히 오시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그의 말의 의미는 그때에 중국은 이방땅이고 주님을 믿는 이가 많지 않았지만 교회에 관해서는 아직 그렇게 복잡함이 없으므로 주님께서 그분의 회복을 여기서 시작하실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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