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길은 죽음과 부활의 체험을 요구함
신약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
2015-01-14 , 조회 (81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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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님들, 내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가지고 있는 여러분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 하는데,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고전 15:31)

I protest by the boasting in you, brothers, which I have in Christ Jesus our Lord, I die daily.(1 Cor 15:31)

오늘 저녁에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들은 모두 고린도전서에 있는 말씀으로서, 특히 전부 15장에 있는 말씀이다. 우리는 14장과 15장, 이 두 장이 매우 의미 깊다는 것을 이미 보았다. 고린도전서 14장은 주로 신언에 관하여 말한다. 오직 신언만이 교회를 건축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바로 다음 장인 15장에서 부활의 문제에 관하여 다루었다. 이것은 14장의 신언이 반드시 부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의 타고난 존재 안에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평범한 말들뿐이며,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하여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을 말해 낼 수 있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부활 안에 머물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옛 길을 정죄하는 이유는 우리를 타고난 영역 안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활의 능력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의 여건 안에서는 부활의 능력을 적용할 필요도 없다. 그 결과 우리는 타고난 존재 안에서 계속 옛 길을 간다. 어떤 것이든 우리가 새 길 안에서 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존재 안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만약 우리가 신약이 정한 길에 따라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그들의 환경에서 구원받고 자신들을 제물로서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을 직접 접촉하고 방문해야 한다. 그러나 타고난 사람은 결코 이것을 할 수 없다.

 이것은 오직 부활의 능력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이 부활의 실재라는 것을 안다. 성령 안에 있을 때, 여러분은 부활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부활과 성령이 밀접한 관계 안에 있을지라도, 우리의 주관적인 체험을 볼 때 부활은 죽음과 더욱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부활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의 타고난 존재와 타고난 능력과 관점은 반드시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 찬송가 227장은 “먼저 피로 씻고서 관유로 적셔지네 골고다 가지 않으면 오순절을 못 얻어”라고 말한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지 않으면 결코 오순절의 그 영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오순절의 그 영은 부활의 실재이기 때문이다. 

부활의 실재를 가지기 위해서는 골고다를 통과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 안에 계시된 대로 이러한 새 길을 보았다. 또한 우리는 이 길을 취하기 위해서는 매 단계마다 죽음과 부활을 통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았다. 나는 특별히 교회 안에서 장로로서 섬기는 형제들에게 이 새 길 안에서 형제자매들을 인도하는 것은 우리에게 부활 안에 사는 사람들이 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는 반드시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우리는 부활과 성령의 실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신약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 제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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