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에 대한 믿는이들의 지원
빌립보서
2015-01-18 , 조회 (27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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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격려나, 사랑의 어떤 위로나, 영의 어떤 교통이나, 어떤 애정과 동정심이 있다면 여러분은 같은 것을 생각하고, 같은 사랑을 가지며, 혼 안에서 연결되고, 한 가지 것을 생각하여, 나의 기쁨이 넘치도록 해 주십시오.(빌 2:1-2)

If there is therefore any encouragement in Christ, if any consolation of love, if any fellowship of spirit, if any tenderheartedness and compassions, Make my joy full, that you think the same thing, having the same love, joined in soul, thinking the one thing.(Phil. 2:1-2)

빌립보서 2장의 처음 네 구절은 하나의 긴 문장이다. 1절과 2절은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격려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통이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같은 것을 생각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한 혼 안에 연합하여 한 가지 일을 생각하여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회복역 참조)고 말한다. 1절과 2절에서 사도는 빌립보인들에게 그들의 격려나 위로를 구했다. 그는 그들에게 그에 대한 그리스도 안의 어떤 격려나 사랑의 위로나 성령의 교통이나 어떤 긍휼이나 어떤 자비가 있다면 그의 기쁨을 충만케 해주기를 그들에게 간청했다. 2장 1절부터 4절까지의 술어는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이다. 이 책은 그리스도의 체험과 누림에 관한 것이므로 그 결과는 기쁨이다. 

이 책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책이다(1:4, 25, 18, 2:17-18, 28-29, 3:1, 4:1, 4). 빌립보인들 가운데에는 그들의 생각에 분쟁이 있었고(4:2), 그 분쟁은 사도를 괴롭혔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같은 것을 생각하라고 당부했고, 심지어 그의 기쁨을 충만케 하기 위해 같은 한 가지 일을 생각하라고 부탁했다. 2장 1절부터 4절까지에서 우리는 믿는이들과 사도 사이의 교통을 볼 수 있다. 빌립보서 1장의 교통은 사도로부터 믿는이에게 이르는 일방적인 교통이다. 이제 2장에서 우리는 믿는이들로부터 사도에게 향하는 교통을 본다. 교통은 그러한 쌍방적 교통을 요구한다. 이러한 쌍방적 교통은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을 위한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에서 풍부했기 때문에 1장에서 믿는이들에게 그의 체험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들에게 대한 바울의 교통이었다. 이제 2장에서 바울은 빌립보의 믿는이들에게 다시 돌아오는 교통을 원했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의 어떤 격려나 사랑의 어떤 위로나 성령의 어떤 교통이나 긍휼이나 그를 향한 자비가 있다면 그의 기쁨을 충만케 해 줄 것을 간청했다. 바울은 빌립보인들에 대하여 기뻐할 수 있었으나 그들에 관한 어떤 것이 충만하게 기뻐하는 것을 막았다. 바울은 말할 수 있었다. 『빌립보인들이여, 나는 너희에 대해서 기쁨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내 기쁨이 충만하지 않다. 충만하게 기쁨을 누리는 데서 나를 가로막는 어떤 것이 너희 가운데 있다. 

나는 너희가나의 기쁨을 충만케 해 주기를 간청한다.』 빌립보서 2장 1절부터 4절까지는 확실히 한 성숙한, 체험많은 사람에 의해 쓰여졌다. 바울의 어조는 온유하고 부드럽다. 바울이 이 구절들을 그렇게 썼기 때문에 빌립보서를 읽는 많은 사람들이 그 구절들을 합당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것은 특별히 1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무엇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가? 왜 바울은 그리스도 안의 어떤 격려나 사랑의 어떤 위로나 성령의 어떤 교통이나 긍휼이나 자비를 요구했는가?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그를 위하여 그러한 것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기쁨을 충만케 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어떤 격려나 위로나 교통이나 긍휼이나 자비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들은 사도 바울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힘썼을 것이다. 

이러한 말은 젊은 사람들에 의해서는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다. 젊은 사람이라면 강하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말했을 것이다. 『빌립보인들이여, 너희는 나를 사랑하느냐?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격려해야 한다.』 그러한 어조는 부드럽지 않고 거칠은 것이다. 바울의 어조와 표현은 그의 성숙도를 나타낸다. 그는 그들에게 간청했으며 그의 교통에 응답하기를 그들에게 간구했다. 그는 1장에서 그들에게 그러한 적극적인 교통을 했다. 지금 그는 그들에게 이 교통이 다시 돌아오기를 원했다. 교통의 그러한 돌아옴은 사도에 대한 믿는이들의 지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격려나 위로나 긍휼은 감옥 안에 있는 바울을 지원했을 것이다. 

바울은 옥에 갇힌 자였지만 그의 관심은 자신의 갇힘에 있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믿는이들의 태도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고 바울을 향한 그들의 영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믿는이들이 그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갖는 것보다 더 사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없다. 다른 말로 해서, 바울은 그의 감금 때문에 괴로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 사이의 그러한 상황 때문에 괴로움을 받은 것이다. 그는 그들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 너무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를 가장 높은 정도로까지 기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바울에게는 그를 지원하는 그들의 격려나 위로나 교통이 필요했다. 만일 빌립보인들이 그에게 그와 같은 지원을 했다면 그의 기쁨을 충만케 했을 것이다.(빌 LS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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