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양심을 지킴 (1)
교회의 발자취
2015-01-23 , 조회 (93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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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이것들을 버렸고, 믿음에 있어서는 파선 하였습니다.(딤전 1:19)

Holding faith and a good conscience, concerning which some, thrusting these away, have become shipwrecked regarding the faith;(1Tim.1:19)

디모데전서 1장 19절은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라고 말하고, 20절은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양심에 대해 가장 실제적으로 많이 말한 책이 바로 디모데서이다. 전서이든지 혹은 후서이든지 사도는 특별히 양심의 문제를 주의하였다. 왜냐하면 양심의 문제와 교회의 황폐함이 관계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교회가 황폐할 때 주님을 따르고 주님 앞에서 사는 사람은 반드시 착한 양심을 지켜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며”(딤전 1:18)라고 분부하였으며 또한 그에게 위임한 것을 지키라고 하였다(딤후 1:13-14). 그러나 바울이 디모데에게 착한 양심을 지키라고 분부한 것은 믿음의 말을 지키라고 한 것보다 더욱 중한 말이었다.

 교회가 황폐하게 된 원인은 어떤 면에서는 주로 사람의 양심에서 온다. 사람이 믿음에서 빗나가는 까닭은 양심의 느낌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도가 한 말과 다르게 말하는 것은 양심의 느낌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교회의 모든 혼란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들이 양심의 느낌을 말살하고 등한히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믿음을 지키면서 양심에 거리낌을 갖는 것은 가능하나 착한 양심을 가지면서 믿음을 지키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가 만약 믿음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의 양심이 유죄 판결을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황폐할 때 많은 사람의 의견과 주장, 논조는 신뢰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사람 속에 있는 양심이 어떻게 말하느냐가 가장 주관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이다. 우리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려면 양심의 평강을 잃어버리게 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양심에 거리낌이 있느냐는 변론할 여지가 없다. 이전에 내가 중국 북부에 있을 때 항상 사람들이 내게 와서, 내가 기독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다고 질책하면서 나에게 마음대로 죄명을 덧붙였다. 나는 변론하지 않았고 다만 “나의 양심은 평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양심 또한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했다. 많은 때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들의 안색은 변하였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입으로 말하는 것은 소용이 없고 양심만이 표준이다. 우리들이 마음 안에서 평안하면 되는 것이다. 

교회가 황폐할 때 양심은 가장 큰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흑암 안에서 빛이 큰 작용을 하는 것과 같다. 한번은 어떤 이가 워치만 니 형제님에게 와서 강하게 질책하며 말하였다. 그러자 니 형제님은 다만 가볍게 “당신 안에 나를 위해 말씀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내게 상당히 큰 영향을 주었다. 이유가 소용없고 변론이 소용없으며 교리 또한 소용없고, 오직 양심만이 척도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결코 사람과 교리를 말하지 말고 자신과 교리를 말하지 말며 다만 우리의 양심에 평강이 있는지 물어 보아야 한다.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양심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오직 양심의 소리만이 우리의 척도가 될 수 있다. 누가 강한 말로 우리를 질책할 때 우리는 반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평강을 구하고 외적인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지실 때, 처음 만지시는 부분이 우리의 양심이다. 양심이 만져지는 것은 시작일 뿐만 아니라 기초이기도 하다. 주님에 대한 사람들의 체험이 얼마나 깊고 얼마나 높은가에 관계없이 양심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교회가 황폐하게 되는 원인 중에서 가장 주된 것은 형제자매들의 양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어떤 이는 믿음에서 떠나고 어떤 이는 사도를 반대한다. 이것은 모두 안에 있는 양심의 느낌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황폐한 일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심을 처리해야 한다. 양심을 분명히 처리할 때 황폐함은 대부분 지나간다. (교회의 발자취,제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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