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우리의 필요를 채움
갈라디아서
2015-01-26 , 조회 (104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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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씨를 뿌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썪을 것을 거두겠지만,  그 영을 위하여 씨를 뿌리는 사람은 그 영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갈 6:8)

For he who sows unto his own flesh will reap corruption of the flesh, but he who sows unto the Spirit  will of the spirit  reap eternal life.(Gal. 6:8)

그러나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우리가 그 영을 따라 산다면, 또한 그 영을 따라 행합시다.(갈 5:24-25)

But they who are of Chist  Jesus have crucified the flesh with its passions and its lusts. If we live by the Spirit, let us also walk by the Spirit. (Gal. 5:24-25)


그 영을 우리의 목표로 삼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사랑해야 한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세상보다 더 사랑스런 것을 제공한다면 그들은 세상 대신 그것을 더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좋은 것이 없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권하는 것은 너무 얕은 것이다. 사람인 우리는 뭔가를 사랑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 욕구는 채워져야 한다. 그 욕구가 우리에게 실제적이고 살아있고 현존하고 주관적인 분인 삼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만족된다면 우리는 세상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보다 훨씬 더 좋은 것, 곧 생명 주는 영이신 삼일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믿는이들은 가르침으로써 구출되는 것이 아니라 삼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으로 채워짐으로 인해 세상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구출된다. 수십 년 전 어느 날 밤 내가 남경 시에서 복음을 전한 후에 한 젊은 여인이 내게 물었다. 『이 선생님 나는 당신이 말한 모든 것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전한 그리스도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나는 영화관을 매우 사랑합니다. 그러니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면 영화관을 포기해야 하는지 어떤지를 알고 싶습니다.』 그 여인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를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의 어린 아들이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가령 당신이 나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을 때 당신의 아들이 예리한 칼을 집어서 그것을 가지고 논다 합시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녀는 몇 조각의 쵸코렛 과자를 그 아이에게 줌으로써 아주 쉽게 그 상황을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아이가 분명히 칼을 놓고 과자를 집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아이에게 칼을 놓으라고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아이는 그 과자에 완전히 사로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말했다. 『영화관에 가는 것은 예리한 칼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고 그리스도는 그 과자에 비유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당신이 그리스도로 당신을 채운다면 이 「칼」에 흥미가 없을 겁니다.』 그녀는 웃으며 내 대답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 일은 믿는이들에게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우리는 그들의 사랑을 사로잡는 더 좋은 것을 제시해야 한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필요는 삼일 하나님을 우리 목표로 삼음으로써 채워진다. 이 목표는 세상이 주는 어떠한 것보다도 더 큰,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실제적인 면에서 새 창조가 될 것이다. 새 창조의 의미는 거룩한 영인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우리와 섞어서 우리를 새롭게 하기 위해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조성하는 것이다. 공자의 윤리적인 가르침은 사람들의 행위를 개선하지만 사람들을 재 조성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삼일 하나님을 목표로 삼고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으로 행할 때 그 영은 우리 안에 거룩한 요소를 분배하고 우리를 재 조성한다. 결국 우리는 더 이상 옛 창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역사된 거룩한 요소로 새 피조물이 된다. 이것의 최종적인 결과는 새 예루살렘일 것이다. 

오늘날 주의 회복 안에 있는 교회 사람들은 거룩한 요소로 재 조성되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자기 개선이나 자기 개량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 우리의 목표는 인내를 배우거나 참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 새 창조란 삼일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만유를 포함한 영을 그들의 목표로 받아들이고, 그를 목적삼고, 그와 한 영이 됨으로써, 결국 거룩한 요소가 그들 안으로 스며들어 그들을 재 조성하고 새롭게 하는 것이다. 6장 16절에서 바울은,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의 규례는 율법을 지키거나 자신을 개선하거나 종교적인 의식을 지키는 규례가 아니다. 그 규례는 삼일 하나님을 목적삼고 그를 따라 행하는 것이다. 이 규례를 따라 행하는 자에게는 평강과 긍휼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목표인 삼일 하나님에 대한 이상이 우리 모두를 통제하고 지시하고 관리해야 한다. 우리가 이 이상을 본다면 그 이상에 의해 통제받고 지시받을 것이다. 주님의 긍휼로 나는 이 이상을 50여 년 전에 보았으며 그 이상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간증할 수 있다. 이 이상이 계속하여 나를 관리하고 통제하고 지시한다. 내 생활은 목적없는 것이 아니다. 내 생활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수십 년 동안 내 목표이신 삼일 하나님에 관해 본 그 이상이 나를 강건하게 하고 유지해 왔다. 우리 목표이신 삼일 하나님에 대한 그 이상을 본다면 우리는 육체를 위하여 심지 않고 우리 영 안에 내주하는 만유를 포함한 삼일 하나님인 그 영을 위하여 심을 것이다. 이 산 인격이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말과 어떠함이 그를 목표 삼아야 한다.(갈 LS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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